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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찬 시인 / 수탕나귀가 아닌 나와 감탕나무와 만난 적 없는 나타샤와
수탕나귀는, 남신의주(南新義州) 유동(柳洞) 감탕나무숲에 셋방 얻어 월세로 산다
남신의주 유동 박씨(朴氏)가 아닌 나는 손가락 마디마디마다 욕심이 많다 감탕나무는 나뭇가지 몸에 박힌 가시가 많다
박정한 나는 지나친 욕심꾸러기 임대업자 쪽방에 사글세 든 입주자들한테서 매월 목돈을 뜯어먹고 산다 청빈한 감탕나무는 돈이 별반 필요 없는지 꼬박꼬박 받아야할 월세를 대폭 탕감해 준다 나는 노후를 위한 거액의 나뭇잎 돈을 긁어모아 거창한 겨우살이를 준비한다
주고받지 않고 안 주거나 못 줘도 가난하지 않은 수탕나귀와 감탕나무
수탕나귀는 감탕나무 이파리마다 바늘 돋은 뾰쪽한 가시 때문에 감탕나무 잎을 먹지 못한다 그렇지만 당나귀는 오줌이 마려워도 말오줌나무 밑에 방뇨하지 않고 감탕나무 아래로 가서 뿌리가 흥건히 젖도록 정성껏 오줌을 눈다 가진 자인 나는 세입자들의 똥구멍이 막히거나 말거나 내 알 바가 아니라고 눈살 찌푸려 외면해버린다
감탕나무와 당나귀는 무산층 프롤레타리아 코피 터지도록 나는 캐피탈리스트 자본을 떠나서 어떻게 살 수 있단 말인가, 라고 주먹을 쥐었다 펴면 바른 말이라고 호응하는 민중들 덕분에 외롭지 않다
말오줌나무야, 사실은 너한테 늘 미안하단다 수탕나귀는 암탕나귀에게 구애 하듯이 말오줌나무에게도 다정다감 감탕나무 왼쪽 그늘에 풀썩 주저앉는 걸 멀찍이서 나는 바라보지만, 냉담하게 세입자들을 몰아세워 월세를 대폭 인상해버린다 보증금을 올려주던가 월납 155% 인상 그렇잖으면, 당장 쪽방을 비우고 나가시오!
가난뱅이들을 닦달, 보증금이 불어나면 불어날수록 부자가 되는 길
이 겨울의 초입에 나타샤야, 이럴 땐 딱 잘라 모른 체 하는 게 좋아 톨스토이가 횡사한 것도 라스코리니코프가 살인을 저지른 것도 명백히 자본주의의 입김 때문, 그렇지만 모르는 건 모른다고 그냥 모른 체 해!
월간 『현대시학』 2013년 11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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