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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석민재 시인 / 빅풋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2. 12.

석민재 시인 / 빅풋

 

 

군함처럼 큰 발을 끌고

아버지가 낭떠러지까지

오두막집을 밀고 갔다가

밀고 왔다가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스텝을 맞추며

말기 암, 엄마를 재우고 있다

 

죽음을 데리고 놀고 있다

죽을까 말까 죽어 줄까 말까

엄마는 아빠를 놀리고 있다

 

아기처럼 엄마처럼

절벽 끝에서 놀고 있다

 

 2017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시

 

 


 

 

석민재 시인 / 코뿔새가 태양의 심장을 찔렀을 때

 

 

껍질째 감자를 볶으며 왼쪽 신장에 박혀 있는 일곱 개의 이빨을 만졌다 물을 자주 마실수록 이빨은 점점 더 아프게 물어뜯었다

 

부리가 심장을 향해 자라는 새가 있었다

 

더 이상 전설의 고향이 무섭지 않았을 때 우리는 할아버지가 붙여 준 일곱 난쟁이식 이름을 버렸고 내 몸엔 피 대신 바닷물이 흘렀다

 

이단(異端)이라고 불렀다

나는 다르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다녔다

 

겨울의 뼈가 태양의 왼쪽 옆구리를 하얗게 찔렀을 때 세상은 투석(透析)중이었다

 

더 이상 부리로 먹이를 먹을 수가 없게 된 코뿔새가

심장을 쪼아 먹으며 죽었다

 

이갈이를 시작했을 때 갓난아이를 잘 재우는 법과 형제들에게 총 겨누는 법을 동시에 가르쳤다

 

죽은 것은

코뿔새였을까, 정오의

심장이었을까

 

감자는 이빨이 박혔던 곳마다, 싹이라고 부르는 푸른 독을 틔웠다

 

 


 

 

석민재 시인 / 계통

 

 

이건 빨강 네가 아무리 우겨도 빨강

파랑 같아도 이건 빨강

노랑 같아도 이건 빨강

오렌지 같아도 바나나 같아도 이건 빨강

지금 이게 빨강이라고요?

 

네 얼굴이 아무리 붉으락푸르락 해도 이건 빨강

나는 빨강이 싫어요! 그래도 너는 빨강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그래도 너는 빨강

 

노랗게 생리통이 와도

청바지에 검은색으로 슬쩍 비쳐도

나는 여자가 싫어요!

 

그래도 너는 빨강

이건 빨강, 정말 빨강!

 

2015년 《시와 사상》 등단시

 

 


 

석민재 시인

경남 하동에서 출생. 2015년 《시와 사상》으로 등단. 2017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으로 『엄마는 나를 또 낳았다』(파란, 2019) 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