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도종환 시인 / 스승의 기도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2. 13.

도종환 시인 / 스승의 기도

 

 

날려 보내기 위해 새들을 키웁니다

아이들이 저희를 사랑하게 해주십시오

당신께서 저희를 사랑하듯

저희가 아이들을 사랑하듯

아이들이 저희를 사랑하게 해 주십시오

저희가 당신께 그러하듯

아이들이 저희를 뜨거운 가슴으로 믿고 따르며

당신께서 저희에게 그러하듯

아이들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며

거짓없이 가르칠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아이들이 있음으로 해서 저희가 있을 수 있듯

저희가 있음으로 해서

아이들이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게 해주십시오

힘차게 나는 날갯짓을 가르치고

세상을 올곧게 보는 눈을 갖게 하고

이윽고 그들이 하늘 너머 날아가고 난 뒤

오래도록 비어 있는 풍경을 바라보다

그 풍경을 지우고 다시 채우는 일로

평생을 살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서로 사랑할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

저희를 사랑하게 해주십시오

저희가 더 더욱 아이들을 사랑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접시꽃 당신, 실천문학사, 1986

 

 


 

 

도종환 시인 / 오월 편지

 

 

붓꽃이 핀 교정에서 편지를 씁니다

당신이 떠나고 없는 하루 이틀은 한달 두달처럼 긴데

당신으로 인해 비어 있는 자리마다 깊디깊은 침묵이 앉습니다

낮에도 뻐꾸기 울고 찔레가 피는 오월입니다

당신 있는 그곳에도 봄이면 꽃이 핍니까

꽃이 지고 필 때마다 당신을 생각합니다

어둠 속에서 하얗게 반짝이며 찔레가 피는 철이면

더욱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은 다 그러하겠지만

오월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가 많은 이 땅에선

찔레 하나가 피는 일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 세상 많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을 사랑하여

오래도록 서로 깊이 사랑하는 일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 생각을 하며 하늘을 보면 꼭 가슴이 메입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서로 영원히 사랑하지 못하고

너무도 아프게 헤어져 울며 평생을 사는지 아는 까닭에

소리내어 말하지 못하고 오늘처럼 꽃잎에 편지를 씁니다

소리 없이 흔들리는 붓꽃잎처럼 마음도 늘 그렇게 흔들려

오는 이 가는 이 눈치에 채이지 않게 또 하루를 보내고

돌아서는 저녁이면 저미는 가슴 빈자리로 바람이 가득가득 몰려옵니다

뜨거우면서도 그렇게 여린 데가 많던 당신의 마음도

이런 저녁이면 바람을 몰고 가끔씩 이 땅을 다녀갑니까

저무는 하늘 낮달처럼 내게 와 머물다 소리 없이 돌아가는

사랑하는 사람이여

 

접시꽃 당신, 실천문학사, 1986

 

 


 

도종환 시인

1954년 충북 청주에서 출생. 충북대 국어교육학과 및 同 대학원 졸업. 1984년《분단시대》를 통해 작품활동 시작. 저서로는 시집으로 『두미마을에서』, 『접시꽃 당신』,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 『당신은 누구십니까』, 『사람의 마릉에 꽃이 진다』, 『부드러운 직선』, 『슬픔의 뿌리』 등이 있고, 산문집 『지금은 묻어둔 그리움』, 『그대 가슴에 뜨는 나뭇잎배』, 『그때 그 도마뱀은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모과』, 『마지막 한 번을 더 용서하는 마음』 등과 동화 『바다유리』 등이 있음. 1997년 제7회 민족예술상 수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