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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남철 시인 / 방랑자!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2. 13.

박남철 시인 / 방랑자!

 

 

1

 

네 이름은 무엇이야,

 

―박해미으……

 

어디 사니,

 

─올개아파트, 이씨사동……

 

백구호,

 

─백구오!

 

전화 번호는?

 

─구치사에……

 

일팔구팔!

 

─일파구파!

 

엄마 이름은?

 

─숀미자!

 

아빠 이름은?

 

─방낭자……

 

박남철!

 

─방낭자!

 

박남철!

 

─방낭자! 방낭자!

 

2

 

여보오, 잔깐만……

 

(박해미르씨가 송미자씨에게 하는 말이다. 기가 막힌 마누라가 주방 쪽으로 도망치니까 녀석은 그 꽁무니를, 빙글빙글, 웃으며, 뒤쫓아가며, ꡒ여보오…… 잔깐만……ꡓ이다. 말도 마시라, 밤에는 아예 나를 안방에서 쫓아, 낸다. ꡒ내 꺼야! 아빠 저 방 가!ꡓ(〔→`나는 속으로는 좋아서…… 이히히히……'〕)*

 

* `학교 여선생님들에게 물어 보니 다 텔레비를 보고 하는 말이란다.'

 

3

 

`문득 어느 여관에서,'

 

`어엄마, 어엄마가 보고 시잎어어……'

 

`난 집에 갈 때가 제일 행복해……'

 

(난 안 그래……)

 

반시대적 고찰, 한겨레, 1988

 

 


 

 

박남철 시인 / 별

 

 

자정의 불면

자정 자정의 불면의

고독의 쇠망치 고독의

자정의 밤거리 어머니

자정의 불면의 고독의

쇠망치 자정의

 

어머니

 

어머니 자정이 넘으면요

이상하게 이상하게 잠은 안 오는데요

내가 가혹하게 가혹하게 버려져 있다는

느낌 어머니 죽어라고 죽어라고 잠은

안 오는데요 이상하게 쥐어 뜯는 가슴 어머니

가혹하게 가혹하게 내가 버려져 있다는

느낌 어머니 제발 무서워요 잠은 안 오는데요

 

안 오는데요 어머니 어머니 쇠망치 쇠망치의 플라타너스의 비명의

어머니 제발 무서워요 그만두세요 어머니

어머니 제발 잘못했어요 이젠 제발 그만두세요

 

지상의 인간, 문학과지성사, 1984

 

 


 

 

박남철 시인 / 새로운 돼지

 

 

                         `날 좀 놔 둬요, 둬둬둬……'

 

큰일났다

 

어제 목욕을 하다 보니 웬 낯선 돼지 한 마리가

배를 쓰윽 내밀면서

 

히이야, 나도 이젠 무게를 좀 잡아 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돼지 저울에 달아 보면 한 20 관은 좋이……

 

돼지왕이라도 되려는지 배에 `왕(王)'자(字)를 쓱 그리면서

아니 그제는 심산유곡(深山幽谷)에서 만난 어느 달마(達磨) 돼지님 말씀이

남철(南喆) 돼지야 너도 이젠 어엿이 결혼을 하고 `돈사적(豚舍的) 일가(一家)'를 이루지 않았느냐

 

자고로 `집가(家)' 자(字)란 `갓 쓴 돼지'를 형상(形象)하나니…… 이거

 

정말 큰일났는데 이거

오늘 아침에는 거시기조차 찔끔거리고, 항문 괄약근이 일으킨 반란에

뱃속에서는 또 뭔가 꾸루룩거리고

 

세수를 하다 다시 거울을 보니 이젠 아예 눈꼬리까지 추욱 늘어지면서

언젠가 나를 쫓아낸 ×장 놈의 그것처럼, 콧구멍도 더 펑펑해졌네

 

둬둬둬!*

 

이거 정말 큰일났는데 이거, 이젠 마누라 돼지까지 더 통통해졌네

잘 다녀오세요, 네에, 헹, 잘 다녀오셨어요……

 

(아이구, 저 통돼……)

 

시골 계시는 엄마 아부지 돼지는 또 어떻고

남철(南喆) 돼지야 너도 이젠 어엿한 조선 돼지가 되지 않았느냐

우리 조선 돼지들이란 그저 먹고 사는 일이 젤 중한 일이니……

시골 계시는 엄마 아부지 돼지님 말씀, 남철 돼지야아

 

남철(南喆) 돼지야아, 너도 이젠 어엿한 `돈사적(豚舍的) 일가(一家)'를 이루지 않았느냐……

 

* 돼지를 몰거나 쫓을 때에 하는 소리

 

지상의 인간, 문학과지성사, 1984

 

 


 

 

박남철 시인 / 식인종류(食人種類)

 

 

1

 

우리가 이 펄펄 끓는 지상(地上)의 후라이팬 위에서 뜨거워 뜨거워 뜨거워 앗 뜨거워 펄펄 펄펄 뛰다 뛰다

 

마침내 아가리를 벌리고 뒤로 허리를 꺾으며, 뼈마디가 튀는 소리를 내며, 쓰러지게 될 때

 

그때 당신들은 말하리라 앗다 그것들 참 엔간히도 질기다고

그때 당신들은 우리를 집어 올려 팔이고 다리고 할 것 없이 찍찍 잡아 뜯으며─설 익은 것도 있고 타 버린 것도 있군

그때 당신들은 우리를 간장에 찍어 우리들을 입에 집어 넣으며

역시 고기란 한(恨)이 있어야 돼 한(恨)이 없으면 당최 비린내가 나싸쌓……

 

2

 

어차피 세상은 돌고 도는 것, 나는 당신들이 돌고 돌아 또는 당신 자식들이 이 냉혹의 후라이팬 위에서 펄펄 펄펄 뛰게 될 때 그때─나는 당신들과 당신들의 후예들이 내 구미에 익도록 기다릴까, 기다릴까

 

아아 나도 함께 펄펄 펄펄 뛰며 함께 울까, 함께 울까

 

지상의 인간, 문학과지성사, 1984

 

 


 

박남철(朴南喆) 시인

1953년 경북 포항에서 출생.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同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79년 《문학과 지성》 겨울호에 시 〈연날리기〉 외 3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저서로는 시집으로 『지상의 인간』 (문학과지성사, 1984)와 『반시대적 고찰』(한겨레, 1988 / 세계사, 1999) , 『러시아집 패설』(청하, 1991)와『자본에 살어리랏다』(창작과비평사, 1997), 『바다 속의 흰머리뫼』 (문학과지성사, 2005), 『제1분』(문학수첩, 2009)과 시선집 『생명의 노래』(문학세계사, 1992) 와 박덕규와의 공동시집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 (청하, 1982)와 박남철 비평시집  『용의 모습으로』 (청하, 1990)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