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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환 시인 / 전선은 눈물을 향해
전선은 눈물을 향해 있다 과학은 해방을 향해 있다 물론 슬픔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눈물에도 화살이 들어 있다 동맹은 착취를 향해 혁명은 기쁨을 향해 있다 물론 그때도 우리는 기차에 대하여 말해야 한다 우리의 슬픔은 기차보다 과한 것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우리의 열정은 기차만 못한 것이 아니었던가 전선은 눈물을 향해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법칙을 향해 가고 있다 그 둘은 같지만 같지 않고 같지 않지만 같다 화살은 두 개의 방향을 갖고 있다 그 둘을 끝내 진보하게 하는 것 그때 인간은 자유이며 당이다 기차가 빠를수록 농촌의 물가는 교통비만 싸지는 것이 아니지? 라면값도 싸지고 해산물도 싸지고 심지어 채소값 쇠고기값 쌀값도 싸진다 자본주의는 착취하면서 동시에 발전을 강요하다 이건 교통문제가 아니고 기차와 무덤에 관한 얘기야 농촌의 교통비가 싸진다는 것은 그만큼 농촌이 착취당한다는 얘기고 기차가? 아니 자본주의가!
기차에 대하여, 창작과비평사, 1990
김정환 시인 / 전태일
그대의 몸은 지금도 온통 화염에 싸여 길길이 뛰고 우리들의 한반도와 강산과 공장과 안방은 온통 생살이 타는 석유 냄새다 마침내 그대, 항상 싸움하는 노동이여 그대를 생각하며 시푸르딩딩한 식칼을 보는 두 손은 떨린다 저것으로, 저 스스로도 몸 떨고 있는 역사의 살기로 우리는 그대를 죽인 누군가의 심장을 찌르거나 분하디분한 우리의 가슴을 찔러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들 짓밟혀 이리 처참한 함성으로도 그대는 돌아올 수 없고 우리들 핏줄 목메인 그리움으로도 그대 대답할 수 없는 것은 단지 웬수 같은 가난만이 그대를 죽인 것이 아니라 단지 허리를 꺾는 비참한 작업환경만이 그대를 죽인 것이 아니라 저질러진 역사 전체가, 그 가위눌린 신음 속에서, 그대를 죽음으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대 죽음의 화염병이여 그대의 몸은 지금도 온통 화염에 싸여 길길이 뛰고 우리들의 낯익은 거리와 휘황찬란한 매판의 빌딩과 처저생계의 하꼬방은 온통 생살이 타는 석유 냄새다 마침내 그대, 항상 싸움하는 노동이여 역사의 에너지여 싸우게 하라 종로에서 청계천에서 해진 작업복을 입은 채 지하상가에서 잘린 젖가슴 피 묻은 꽃으로 피는 광주 금남로에서 싸우게 하라 기름 묻은 주먹으로 쇳가루 섞인 핏줄로 폐결핵 피묻은 가래 마산에서 부산에서 그 이름모를 근육의 아우성으로 그대의 몸은 지금도 온통 화염에 싸여 길길이 뛰고 우리들의 공장과 직장과 학교와 법원과 면회는 온통 생살이 타는 석유 냄새다 마침내 그대 오오 그립고 그립고 처절하게 그립더라도 그대여 불평등과 착취 앞에서 부자유와 억압 앞에서 군사독재와 부정부패 앞에서 남북분단과 식민잔재 앞에서 그 모오든 현재의 저질러진 죄악 앞에서 이루지 못한 미래 완성되지 못한 그리움 앞에서 그대 싸움하는 노동이여 역사의 에너지여 죽음의 화염병이여 그대 추억도 그리움도 핏발 서리게 하라 혓바닥까지 타는 우리들의 생계 속에서 지나간 날들이여 죽창 들고 일어서라 일어서서 꽂혀라 저 거짓과 신음소리와 분노의 땅 위에 외쳐라 강인한 팔다리로 오지 않는 미래를 향해 굽이굽이 피 흘릴 길일 갈 길을 향해 추억이여 핏발 서려라 대대로 이어져온 전통이여 가문과 가문이여 노동자여 노동자여 죽창 들고 하늘을 보라 전태일 열사 그가 비리디비린 인간의 하늘이다 마침내 그대 전․태․일! 그대 항상 싸움하는 노동이여 역사의 에너지여 죽음의 화염병이여, 그렇습니다 여러분
좋은 꽃, 민음사, 1985
김정환 시인 / 절망에 대해서
자동차 헤드라이트는 눈도 없고 코도 없고 발설의 입도 없고 다만 나는 아직도 어두운 밤 뒷골목길에서 뒤에서(혹은 앞에서) 오는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두고 차분히 걷지 못한다 돌아보면 자동차 헤드라이트는 내 왜소한 그림자를 삽시간에 삼켜 버리고 다시 토해내고, 토해낸 그림자는 갑자기 산더미만해지고 헤드라이트와 내 그림자는 골목 저편 끝으로 아주 조그맣게 사라져가는 것을 보면서 나는 게가 된다 담벼락 끝으로 설설 기어 오르는 헤드라이트는 다만 번쩍거릴 뿐인데 뻔뻔스레 번쩍거릴 뿐인데 헤드라이트의 절망과 내 몸 속, 그립고 또한 아주 왜소한 나의 절망이 그리고 절망의 절망이 일순의 거대한 시대를 지나 골목 저편으로 어둠을 몰고 사라져가는 것을 나는 다만 한 마리 비겁한 게처럼 설설 기면서 지켜볼 수 있을 뿐이다 나는 아직도 어두운 밤 뒷골목길에서 뒤에서(혹은 아무데서) 오는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그대로 두고 안심하지 못한다. 참지 못한다.
지울 수 없는 노래, 창작과비평사,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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