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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박용래 시인 / 상치꽃 아욱꽃 외 5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7.

박용래 시인 / 상치꽃 아욱꽃

 

 

상치꽃은

상치 대궁만큼 웃네.

 

아욱꽃은

아욱 대궁만큼

 

잔 한잔 비우고

잔 비우고

 

배꼽

내놓고 웃네.

 

이끼 낀

돌담

 

아 이즈러진 달이

실낱 같다는

 

시인의 이름

잊었네.

 

백발의 꽃대궁, 문학예술사, 1980

 

 


 

 

박용래 시인 / 샘터

 

 

샘바닥에

걸린 하현(下弦)

 

얼음을 뜨네

살얼음 속에

 

동동 비치는 두부며

콩나물

 

삼십원어치 아침

동전(銅錢) 몇 닢의 출범(出帆)

 

― 지느러미의 무게

 

구숫한 하루

아깃한 하루

 

쪽박으로

뜨네.

 

아지풀, 민음사, 1975

 

 


 

 

박용래 시인 / 서산(西山)

 

 

상칫단

아욱단 씻는

 

개구리 울음 오리(五里) 안팎에

 

보릿짚

호밀짚 씹는

 

일락서산(日落西山)에 개구리 울음.

 

아지풀, 민음사, 1975

 

 


 

 

박용래 시인 / 소감(小感)

 

 

한뼘데기 논밭이라 할 일도 없어, 흥부도 흥얼흥얼 문풍지 바르면 흥부네 문턱은 햇살이 한말.

파랭이꽃 몇 송이 아무렇게 따서 문고리 문살에 무늬 놓으면 흥부네 몽당비 햇살이 열 말.

 

아지풀, 민음사, 1975

 

 


 

 

박용래 시인 / 소나기

 

 

누웠는 사람보다 앉았는 사람 앉았는 사람보다 섰는 사람 섰는 사람보다 걷는 사람 혼자 걷는 사람보다 송아지 두, 세 마리 앞세우고 소나기에 쫓기는 사람.

 

아지풀, 민음사, 1975

 

 


 

 

박용래 시인 / 쇠죽가마

 

 

솔개 그림자

스치는

행정(杏亭) 마슬

그대

팔꿈치로

그리는

소금쟁이

잠자리 아재비

물방개

지우고 지우고

그대

발꿈치로

그리는

엉겅퀴

도깨비 바늘

괭이풀

지우고 지우고

오 그대

가장 뜨거운

입김으로

그리는

쇠죽가마

불씨

하나뿐인 젊음

하나뿐인 노래.

 

백발의 꽃대궁, 문학예술사, 1980

 

 


 

박용래 [朴龍來, 1925.8.14~1980.11.21] 시인

1925년 충남 논산에서 출생. 강경 상업고등학교 졸업. 1955년 《현대문학》에 시 〈가을의 노래〉외 2편이 추천되어 등단. 시집으로 『싸락눈』(1969), 『강아지풀』(1975), 『백발의 꽃대중』(1980) 등과 시전집 『먼바다』(1984)가 있음. 1961년 제5회 충남문학상과 1969년 시집 『싸락눈』으로 [현대시학] 제정 제1회 작품상과 1980년 제7회 한국문학 작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