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래 시인 / 상치꽃 아욱꽃
상치꽃은 상치 대궁만큼 웃네.
아욱꽃은 아욱 대궁만큼
잔 한잔 비우고 잔 비우고
배꼽 내놓고 웃네.
이끼 낀 돌담
아 이즈러진 달이 실낱 같다는
시인의 이름 잊었네.
백발의 꽃대궁, 문학예술사, 1980
박용래 시인 / 샘터
샘바닥에 걸린 하현(下弦)
얼음을 뜨네 살얼음 속에
동동 비치는 두부며 콩나물
삼십원어치 아침 동전(銅錢) 몇 닢의 출범(出帆)
― 지느러미의 무게
구숫한 하루 아깃한 하루
쪽박으로 뜨네.
아지풀, 민음사, 1975
박용래 시인 / 서산(西山)
상칫단 아욱단 씻는
개구리 울음 오리(五里) 안팎에
보릿짚 호밀짚 씹는
일락서산(日落西山)에 개구리 울음.
아지풀, 민음사, 1975
박용래 시인 / 소감(小感)
한뼘데기 논밭이라 할 일도 없어, 흥부도 흥얼흥얼 문풍지 바르면 흥부네 문턱은 햇살이 한말. 파랭이꽃 몇 송이 아무렇게 따서 문고리 문살에 무늬 놓으면 흥부네 몽당비 햇살이 열 말.
아지풀, 민음사, 1975
박용래 시인 / 소나기
누웠는 사람보다 앉았는 사람 앉았는 사람보다 섰는 사람 섰는 사람보다 걷는 사람 혼자 걷는 사람보다 송아지 두, 세 마리 앞세우고 소나기에 쫓기는 사람.
아지풀, 민음사, 1975
박용래 시인 / 쇠죽가마
솔개 그림자 스치는 행정(杏亭) 마슬 그대 팔꿈치로 그리는 소금쟁이 잠자리 아재비 물방개 지우고 지우고 그대 발꿈치로 그리는 엉겅퀴 도깨비 바늘 괭이풀 지우고 지우고 오 그대 가장 뜨거운 입김으로 그리는 쇠죽가마 불씨 하나뿐인 젊음 하나뿐인 노래.
백발의 꽃대궁, 문학예술사,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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