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래 시인 / 시락죽
바닥 난 통파
움 속의 강설(降雪)
꼭두새벽부터
강설(降雪)을 쓸고
동짓날
시락죽이나
끓이며
휘젓고 있을
귀뿌리 가린
후살이의
목수건(木手巾).
아지풀, 민음사, 1975
박용래 시인 / 앵두, 살구꽃 피면
앵두꽃 피면 앵두바람 살구꽃 피면 살구바람
보리바람에 고뿔 들릴세라 황새목 둘러주던 외할머니 목수건
먼 바다, 창작과비평사, 1984
박용래 시인 / 엉겅퀴
잎새를 따 물고 돌아서잔다 이토록 갈피없이 흔들리는 옷자락
몇 발자국 안에서 그날 엷은 웃음살마저 번져도
그리운 이 지금은 너무 멀리 있다 어쩌면 오직 너 하나만을 위해
기운 피곤이 보랏빛 흥분이 되어 슬리는 저 능선
함부로 폈다 목놓아 진다.
싸락눈, 삼애사, 1969
박용래 시인 / 연시(軟柿)
여름 한낮
비름잎에
꽂힌 땡볕이
이웃 마을
돌담 위
연시(軟柿)로 익다
한쪽 볼
서리에 묻고
깊은 잠 자다
눈 오는 어느 날
깨어나
제상(祭床) 아래
심지 머금은
종발로 빛나다.
아지풀, 민음사, 1975
박용래 시인 / 연지빛 반달형(型)
미풍 사운대는 반달형(型) 터널을 만들자. 찔레넝쿨 터널을. 모내기 다랑이에 비치던 얼굴, 찔레.
폐수(廢水)가 흐르는 길, 하루 삼부교대의 여공(女工)들이 봇물 쏟아지듯 쏟아져 나오는 시멘트 담벼락.
밋밋한 담벼락 아니라, 유리쪽 가시철망 아니라, 삼삼한 찔레넝쿨 터널을 만들자, 오솔길인 양.
산머루같이 까만 눈, 더러는 핏기 가신 볼, 갈래머리 단발머리도 섞인 하루 삼부교대의 암펄들아
너희들 고향은 어디? 뻐꾹 뻐꾹 소리 따라 감꽃 지는 곳, 감자알은 아직 애리고 오디 또한 잎에 가려 떨떠름한
슬픔도 꿈인 양 흐르는 너희들, 고향 하늘 보이도록. 목덜미, 발꿈치에도 찔레 향기 묻히도록.
연지빛 반달형(型) 터널을 만들자.
먼 바다, 창작과비평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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