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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원 시인 / 벙커
시계 반대 방향으로 어둠이 지나갔다
어둠의 보폭은 한 뼘, 두 뼘 조금씩 환해지는 것 벽을 짚고 헤드폰을 쓰고 우리는 흙의 자세로 바닥에 누워 석류가 터지는 소리를 기록했다
비밀이 있던 자리에 빛을 침투시키면 백 개의 물이 금빛으로 흘러갔다
흑연을 껴안고 서있는 시간의 기둥 지우개밥보다 가볍게 흩어지는 죽은 약속의 입자들 사과 꽃은 벽 속에서 말문이 트였다
옹알이에서 나온 첫 말, 눈부셔 캄캄한 에코로 집을 지으며 빗소리도 들었지만 곤충도 절지동물도 자라지 않았다
천장은 낮고 전깃줄은 스물두 개 입구와 출구를 찾는 법은 햇빛 냄새를 따라가는 것
녹슨 자물쇠를 더듬으며 나비를 풀어주고 어둠보다 더 어두운 그림자를 밟으며 우리는 새벽까지 수맥을 따라갔다 바닥은 빛을 다 드러냈다
계간『신생』2019년 여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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