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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마광수 시인 /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2. 19.

마광수 시인 /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꼭 금이나 다이아몬드가 아니더라도

양철로 된 귀걸이나 목걸이, 반지, 팔찌를

주렁주렁 늘어뜨린 여자는 아름답다

화장을 많이 한 여자는 더욱더 아름답다

덕지덕지 바른 한 파운드의 분(粉) 아래서

순수한 얼굴은 보석처럼 빛난다

아무것도 치장하지 않거나 화장기가 없는 여인은

훨씬 덜 순수해 보인다 거짓 같다

감추려 하는 표정이 없이 너무 적나라하게 자신에 넘쳐

나를 압도한다 뻔뻔스런 독재자처럼

적(敵)처럼 속물주의적 애국자처럼

화장한 여인의 얼굴에선 여인의 본능이 빛처럼 흐르고

더 호소적이다 모든 외로운 남성들에게

한층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가끔씩 눈물이 화장 위에 얼룩져 흐를 때

나는 더욱 감상적으로 슬퍼져서 여인이 사랑스럽다.

현실적, 현실적으로 되어

나도 화장을 하고 싶다

분으로 덕지덕지 얼굴을 가리고 싶다

귀걸이, 목걸이, 팔찌라도 하여

내 몸을 주렁주렁 감싸 안고 싶다

현실적으로

진짜 현실적으로

 

광마집, 심상사, 1980

 

 


 

 

마광수 시인 / 당세풍(當世風)의 결혼(結婚)

 

 

여러 해 동안 내 마음은 흔들려왔다

겁많은 희망(希望)도, 옹졸한 절망(絶望)도 만나왔다

한껏 명목(名目)뿐인 죽음과도 만나왔다

 

이젠 힘주어 시끄럽게 짖어도 보겠다

허우적 허우적 신나게 춤도 추어보겠다

오묘한 생활(生活)의 섭리(攝理)도, 밤의 진리(眞理)도 만나보겠다

안도(安堵)도 단란(團欒)도 만나보겠다

 

이젠 사치스런 반항(反抗)도 폭음(暴飮)도 없다

대견스런 사주팔자(四柱八字),

과로(過勞)한 아부(阿附)의 순간들만 있다

 

곧 쓰러지게 되리라

모든 습관(習慣)처럼, 본능(本能)처럼

잠깐은 신났던 저번(這番)의 사랑처럼

행복(幸福)으로 빛나던

짧은 예감(豫感)처럼

 

광마집, 심상사, 1980

 

 


 

마광수(馬光洙, 1951. 3.10~ 2017. 9.5)

1951년 경기도의 발안에서 출생. 연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 1983년 윤동주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수여받음. 1977년 《현대문학》에 배꼽에 망나니의 노래, 고구려, 당세풍의 결혼. 겁, 장자사 등 여섯 편의 시가 박두진 시인에 의해 추천되어 시문단에 데뷔. 문학이론서와 평론집을 출간해오던 그는 1989년 에세이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와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를 출간함으로써 세간에 화제를 모음. 《문학사상》에 장편 권태를 연재하면서 소설가로서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91년 장편 『즐거운 사라』로 인해 구속되고, 교수이던 연세대학교에서도 직위해제를 당하지만 복직됨. 2017년 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