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영희 시인 / 종
누군가 문간에 걸어둔 모자 같다. 어떤 날은 길고 가느다란 소리만 가득해서 테가 다 풀릴 것 같다.
오후의 종소리는 적막한 문에 귀를 부른다. 어느 경내이거나 미신을 몰아내던 예배당 같은, 그러나 지금 여기 한 그릇 손님을 부르는 밥의 종교 문은 안쪽을 먹여 살린다 쫑긋, 안팎으로 모은 넓은귀다.
손을 모으는 사람, 고개를 돌리는 사람 종은 사람을 구별하여 소리 내지 않는다. 드문드문 환해지는 문 소리만으로도 문은 화들짝 반갑다 꽃피는 날에는 종소리도 들떠 여행을 떠난 것일까 문이 열리면 꺼져가던 혀들이 잠깐 타올랐다, 도로 식었다.
모자를 고쳐 쓰고 퇴장하는 종들 종종 울렸으면,
웹진 『시인광장』 2019년 11월호 발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김명인 시인 / 고산행(高山行) 외 3편 (0) | 2020.02.21 |
|---|---|
| 표규현 시인 / 걸레 (0) | 2020.02.21 |
| 김희준 시인 / 아무나씨에게 인사 (0) | 2020.02.21 |
| 김령 시인 / Del (0) | 2020.02.20 |
| 강준모 시인 / 오래된 중력이 앉다 (0) | 2020.0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