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희 시인 / 정구
정구를 친다.
천사같이 하얀 그대의 날개에서 포롱거리며 내게로 오는 한 알의 우주.
야채처럼 싱싱한 햇살이 내리는 녹음 한낮에 그대가 내게 주는 한 알의 우주.
나는 다시 그대에게 나를 보낸다.
사랑이란 서로를 주는 것이듯 우리들은 우리들의 우주 속에 빠져서 힘껏 서로를 주고 있었다.
혼자 무너지는 종소리, 문학예술사, 1984
문정희 시인 / 참회 시(詩) 1
말로써 우리가 감동되던 시대는 갔다. 우리들은 모두 어두움 속에서 더욱 빛나는 별이 되어 몸으로 올라 몸으로 올라 온몸으로 통곡하는 것이 이 시대의 감동이다.
봄이 오면 내 기다림과 부끄러움을 말하리라. 새벽이 오면 나는 꿇어앉아 기도하리라. 손풍금 소리 같은 나이 어린 자유(自由). 눈 멀고 힘 잃은, 결코 순백해야만 하는 우리 어머니 앞에 바람 따라 쏠려다니던 죽은 말들의 서러움을. 말이 다시 노래가 되고, 노래는 흐르고 흘러서 아, 감동의 푸른 나무로 부활되기를.
새떼, 민학사, 1975
문정희 시인 / 촌장(村長)
촌장님 용서하셔요. 쑥처럼 뻣세져서 산불을 보고도 놀라지 않고 역신과 자고 있는 아내를 봐도 무심한 이 눈을 눈을 빼서 꽃씨처럼 종이에 싸서 한 십년 후에 오는 봄에 뿌리려 함을 용서하셔요.
어둠이 쌓이고 쌓여서 새벽을 만든다지요. `불을 끄라! 불을 끄라! 눈에 켠 불을 끄라! 적이 온다. 중요한 시기다. 이때 빠꼼대는 게 그 누구얏!'
촌장님 이때 속노래 함을 용서하셔요. `절망을 부끄러워 말라. 수많은 잎처럼 쌓이고 쌓여서 썩어 문드러져 호수 속의 노래되어 졸 졸 흐를지니'
아, 울다가 잡혀간 친구를 기다리는 이 겨울.
새떼, 민학사,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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