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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박남수 시인 / 다리 밑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21.

박남수 시인 / 다리 밑

 

 

나무 다리 밑 불빛이 부우염히 달려

거적자리 위에 그림자 크다랗다.

 

잠자리 찾아 이리로 들렸나……

 

반딧불이 날고, 개울물이 도론도론 들리는

다리 밑에는 얻어 들인 저녁이 한참 갔고나.

 

개울 물만 화안히 트고

통 어둠에 잠겼는데

어디서 장타령 외는 소리 느렇지게 들린다.

 

날이 새면

다리 밑은 아무것도 없으리라.

 

초롱불, 삼문사, 1940

 

 


 

 

박남수 시인 / 딸에게

 

 

내 딸이 딸을 낳았다는

유월(六月) 십팔일(十八日)의 국제전화(國際電話)를 받고

 

네가 걸음마를 떼고, 어느 날

문지방을 넘던 모험(冒險)의 기쁨을

네 얼굴에서 보았을 때,

네 어미는 큰일이나 난 듯,

두 팔을 벌리고 부축하려고 했었지.

 

그 후, 너는

도랑을 뛰어 넘었고

바다를 또한 뛰어 넘었고

그 조심스런 어머니 품에서 날아 올라

지금은 뉴욕에서 딸을 낳았다.

 

어느 날엔가는, 너도

네 어린것이 문지방을 넘어설 때

너는 두 팔을 벌리고

어머니가 될 것이다.

 

사슴의 관(冠), 문학세계사, 1981

 

 


 

 

박남수 시인 / 마른 풀잎이

 

 

마른 풀잎이

하루 종일 울고 있었다.

눈이 덮인 산말령으로

고압선이 기어오르고 있었다.

입춘 대길의 문을 열고

진달래가 바깥을 내다보고 있었다.

죽은 나무 등걸에

푸른 좁쌀이 돋고 있었다.

한랭한 가지 끝에서, 멀리를

발돋움하는 새의 그림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사슴의 관(冠), 문학세계사, 1981

 

 


 

 

박남수 시인 / 무제(無題) 5

 

 

나는 회현동(會賢洞)에 있고

당신은 마석(磨石)에 있습니다.

우리는 헤어진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성북동(城北洞)에 살고 있었고

나는 명륜동(明倫洞)에 살고 있었을 때에도

우리가 헤어져 있었던 것이 아닌 것처럼.

나는 이승에 있고

당신은 저승에 있어도 좋습니다.

우리는 헤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일본에서 대학의 학생이었고

당신은 서울에서 역시 대학의 학생이었을 때에도

우리는 헤어져 있었던 것이 아닌 것처럼.

 

사슴의 관(冠), 문학세계사, 1981

 

 


 

 

박남수 시인 / 무제(無題) 6

 

 

한동안

어느 시인(詩人)이 죽음의 연습을 하신다고

발랄한 체조(體操)를 하셨지만,

얼마간은 팔뚝에 알통도 생기기는 하셨겠지만

이 세상에는

죽고 사는 일이란 본시 없는 것.

그저 저기 돌처럼 있고

여기 꽃처럼 있을 뿐,

한 동안 지훈(芝薰)으로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고

한 동안 한직(漢稷)으로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고

한 줄의 시구(詩句)가

잠깐 피는 꽃이나 다를 바 없다.

어제에 진 한 송이 꽃이나

오늘에 핀 한 송이 꽃이나

꽃은 꽃일 뿐―언제나 꽃은 꽃일 뿐이다.

 

사슴의 관(冠), 문학세계사, 1981

 

 


 

 

박남수(朴南秀) 시인(1918.5.3-1994.9.17)

평양 출생. 숭실상고를 거쳐 1941년 일본 주오(中央)대학을 졸업. 초기에는 자연적 서경과 서정 속에서 절박한 감정을 은유적으로 환기하는 시를 썼으며, 후기에는 존재성을 규명하려는 주지적 경향을 가졌다.  유학 시절 제1회 <문장>지의 추천을 받은 김종한, 이용악 등과 사귀게 되면서, 그들의 권유로 <문장>지에 투고하였는데,  1939년부터 1940년까지 정지용에게 추천됨.  1940년에 첫 시집인 <초롱불>을 낸 이후 "갈매기 소묘" "새의 암장(暗葬)" 등 정갈하면서도 의식의 깊이를 느끼게 하는 시를 써 왔다. 미국에서 지낸 이국 생활의 외로움을 그린 <그리고 그 이후>라는 시집을 펴내기도 함. 1957년에는 유치환, 박목월, 조지훈, 장만영 등과 함께 '한국시인협회'를 창립했으며, 아시아자유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1994년 6월에는 조국 통일에의 절실한 심경을 노래한 시 "꿈의 물감"으로 서울신문사가 제정한 공초(空超)문학상(제2

회)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