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순 시인 / 불나비
불나비! 사랑의 불 속에 뛰어들어 자기(自己)야 있고 없고
불나비!
생명(生命)의 불 속에 날아들어 목숨이야 있고 없고
불나비!
비밀(秘密)의 불 속에 달겨들어 목숨과 죽음을 넘어 그 `무엇'에 부닥치려는 무서운 몸부림이여
너 MEHR LICHT!에의 일편단심(一片丹心) 그 생리(生理)의 실천자(實踐者)
너 영원(永遠)히 처절(凄絶)하고 비장(悲壯)한 `프로메튜스'의 후예(後裔)여 화신(化身)이여
깊은 밤빛같이 깜고 좁쌀알같이 작은 고 얄미운 눈 동자(瞳子)
오직 불과 빛을 향(向)해서만 마련되었기에 살아서 깜빡이는 순간(瞬間)이 없고 죽어서 눈 감지 못하는 숙명(宿命)이여 불도 오히려 서늘한 듯 무서운 너 정열(情熱)의 불꽃이여
단지 빛을 위하여 나고 빛을 위하여 살고 빛을 위하여 죽는―
한없이 비장(悲壯)하고 찬란(燦爛)하고 거룩한 너 운명(運命)의 조화(造化)여
생명(生命)보다 죽음보다 삶보다 사랑보다
오직 불과 빛 타오르는 불빛을―
불빛속에 침투(浸透)되어 무한(無限)히 감추어진 생명(生命)과 죽음을 빼앗고도 남음이 있을…… 그 속 모를 불빛의 신비(神秘)의 심연(深淵)속에 마구 뛰어들어 날아들어 부닥쳐 몰입(沒入)하려는 너 뼈저리게 안타까운……
꽃가루인양 향기(香氣)롭고 보드럽고 꽃잎파리마냥 고운 나래의 기적(奇蹟)이여
불속에 몇번이고 거듭 거듭 덤벼들어 그 나래가 타고 알몸이 타고 기진맥진(氣盡脈盡) 땅바닥에 굴러 떨어져 소리없는 신음(呻吟) 속에
고 작은 가슴팍 팔락거리며 기식(氣息)은 암암(唵唵)해도 불 속에 불붙는 영원(永遠)한 향수(鄕愁)여.
공초오상순시선(空超吳相淳詩選), 자유문화사, 1963
오상순 시인 / 새 하늘이 열리는 소리
낙엽(落葉)을 밟으며 거리를 가도 서럽잖은 눈망울은 사슴을 닮고……
높은 하늘 속 날개 펴고 훠얼 훠얼 날으고 싶은 맑은 서정은 구름을 닮아라.
바람을 타지 않은 어린 갈대들……
물결이 거슬려 흘러도 매운 연기가 억수로 휩쓸어도 미움을 모르는 가슴은 산을 닮았다 바다를 닮았다 하늘을 닮았다
……………
이 밤 생각에 지치고 외로움에 지치고 슬픔에 지치고 사랑에 지치고 그리고 삶에 지친 모든 마음들이 이리로 오면 생각이 트이고 외로움이 걷히고 슬픔이 걷히고 사랑이 열리고
그리고 새 삶의 길이 보이리니 그것은 어쩌면 하늘의 목소리…… 오오 이 밤의 향연이여 새 하늘이 열리는 소리여.
공초오상순시선(空超吳相淳詩選), 자유문화사,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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