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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박목월 시인 / 생토(生土)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2. 11.

박목월 시인 / 생토(生土)

 

 

울산 접경(蔚山接境)에서도 영일(迎日)에서도

그들을 만났다.

마른 논바닥 같은 얼굴들.

 

봉화(奉化)에서도 춘양(春陽)에서도

그들을 만났다.

억만 년(億萬年)을 산 듯한 얼굴들.

 

인삼(人蔘)이 명물(名物)인 풍기(豊基)에서도

그들을 만났다.

척척한 금이 간 얼굴들.

 

다만 문경(聞慶) 새재를 넘는 길목에서

히죽이 웃는 그 얼굴은

시뻘건 생토(生土) 같았다.

 

-<경상도의 가랑잎> 민중서관, 1968

 

 


 

 

박목월 시인 / 서가(書架)

 

 

친구들이 서가(書架)에 나란하다.

외로운 서재(書齋)

등불 앞에서

나와 속삭이려고 이런 밤을 기다렸나 보다.

반쯤 비에 젖은

그들의 영혼(靈魂)……

나도 외롭다.

한 권을 뽑아들면

커피점(店)에서 만난 그분과는

사뭇 다른

다정(多情)한 눈짓.

외로울 때는 누구나 정(情)다워지나 보다.

따뜻한 영혼의 미소(微笑).

때로 말씨가 서투른 구절(句節)도 있군.

그것이야 대수롭지 않은 겉치레

벗기고 보면

아아 놀라운 그 분의 하늘

―가만히

나는 책을 덮는다. (얘기에 싫증이 나서가 아닐세)

돌아 앉아

그 분의 말을 생각해 보려고 그래.

과연 인생은 이처럼 서러운가, 하고.

때로는 긴 밤을 생각에 잠겨 밝히면

새벽 찬 기운에

서가(書架)는 아아(峨峨)한 산맥(山脈).

친구는 없고……

골짜기에 만년설(萬年雪) 눈부신 빙하(氷河).

 

난(蘭).기타(其他), 신구문화사, 1959

 

 


 

 

박목월 시인 / 소묘  A

 

 

비닐 우산을 받쳐들고

사람들은

일자리로 나가고 있었다.

생활을 근심하며

인사를 하며.

우산 속

모든 얼굴은 젖어 있었다.

그들의 눈에

우산이 보일까.

보이지 않는

호젓한 심령의 둘레.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들이 사는 동안

끊임없이 내리게 될

이슬비.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비닐 우산을

하나씩 받쳐들고

지하로(地下路)로 향하고 있다.

세종로에서.

지상에서.

 

무순(無順), 삼중당, 1976

 

 


 

 

박목월 시인 / 소묘  B

 

 

200여 킬로를 달려도

빈 가지뿐이었다.

 

서울에서 청주까지 청주에서 수안보까지

새 한 마리 볼 수 없었다.

 

언제부터일까.

조국의 자연은 이처럼 허하고

 

어린 날의

그 귀여운 것들은

어디로 가 버렸을까.

 

썰렁한 멧부리를 돌면

눈이 박힌 골짜기에 눈발이 치고

빈 손을 치켜든 나무

 

혹은

금이 간 백밀러에 클로즈업되는

어린 여차장의 갈라진 얼굴.

 

참으로 새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들은 책상보자기나

커틴 자락에

은실로 수놓아 장식되었을 뿐.

 

망각의 여울가에

지저귀는 귀여운 입부리

 

혹은

금이 간 백밀러에 일그러진 채 축소된

어린 여차장의 발갛게 언 얼굴.

 

무순(無順), 삼중당, 1976

 

 


 

 

박목월 시인 / 소찬(素饌)

 

 

오늘 나의 밥상에는

냉이국 한 그릇.

풋나물 무침에

신태(新苔).

미나리 김치.

투박한 보시기에 끓는 장 찌개.

 

실보다 가는 목숨이 타고난 복록(福祿)을.

가난한 자의 성찬(盛饌)을.

묵도(黙禱)를 드리고

젓가락을 잡으니

혀에 그득한

자연의 쓰고도 향깃한 것이여.

경건한 봄의 말씀의 맛이여.

 

난(蘭).기타(其他), 신구문화사, 1959

 

 


 

박목월[朴木月, 1915.1.6~1978.3.24] 시인

본명은 영종(泳鍾). 1916년 경상남도 고성(固城)에서 출생하여 경상북도 경주(慶州)에서 자람. 1935년 대구 계성(啓聖)중학 졸업. 정지용(鄭芝溶)에 의해 1939년 문예지 《문장(文章)》에 시가 추천되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청록집(靑鹿集)』(3인시), 『경상도가랑잎』, 『사력질(砂礫質)』, 『무순(無順)』 등과 수필집으로 『구름의 서정』, 『밤에 쓴 인생론(人生論)』 그밖의 저서로는 『문학의 기술(技術)』, 『실용문장대백과(實用文章大百科)』 등이 있음. 1953년 홍익대학교 조교수, 1961년 한양대학교 부교수 및 1963년 교수, 1965년 대한민국 예술원(藝術院) 회원, 1968년 한국시인협회 회장, 1973년 시전문지 『심상(心像)』의 발행인, 1976년 한양대학교 문리과대학장 역임. 자유문학상, 5월문예상, 서울시문화상, 국민훈장 모란장 등을 수상. 1978년 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