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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박목월 시인 / 산그늘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2. 10.

박목월 시인 / 산그늘

 

 

장독 뒤 울밑에

목단(牧丹)꽃 오무는 저녁답

모과목(木果木) 새순밭에

산그늘이 내려왔다

    워어어임아 워어어임*

 

길 잃은 송아지

구름만 보며

초저녁 별만 보며

밟고 갔나베

무질레밭 약초(藥草)길

    워어어임아 워어어임

 

휘휘휘 비탈길에

저녁놀 곱게 탄다

황토 먼 산길이사

피 먹은 허리띠

    워어어임아 워어어임

 

젊음도 안타까움도

흐르는 꿈일다

애달픔처럼 애달픔처럼 아득히

상기 산그늘은 나려간다

    워어어임아 워어어임

 

* 워어어임: 경상도 지방에서 멀리 송아지 부르는 소리

 

청록집, 을유문화사, 1946

 

 


 

 

박목월 시인 / 산도화(山桃花) 2

 

 

석산(石山)에는

보랏빛 은은한 기운이 돌고

 

조용한

진종일

 

그런 날에

산도화(山桃花)

산마을에

물 소리

 

지저귀는 새 소리 묏새 소리

산록을 내려가면 잦아지는데

 

삼월을 건너가는

햇살 아씨.

 

산도화(山桃花), 영웅출판사, 1955

 

 


 

 

박목월 시인 / 산도화(山桃花) 3

 

 

청석(靑石)에 어리는

찬물 소리

 

반은 눈이 녹은

산마을의 새 소리

 

청전(靑田)* 산수도에

삼월 한나절

 

산도화(山桃花)

두어 송이

 

늠름한

품(品)을

 

산이 환하게

틔어 뵈는데

 

한머리 아롱진

운시(韻詩) 한 구(句).

 

* 청전(靑田): 동양화가 이상범(李象範) 선생의 호(號).

 

산도화(山桃花), 영웅출판사, 1955

 

 


 

 

박목월 시인 / 산색(山色)

 

 

산빛은

제대로 풀리고

 

꾀꼬리 목청은

티어 오는데

 

달빛에 목선(木船) 가듯

조는 보살(菩薩)

 

꽃그늘 환한 물

조는 보살(菩薩)

 

산도화(山桃花), 영웅출판사, 1955

 

 


 

 

박목월 시인 / 삼월

 

 

방초봉(芳草峰) 한나절

고운 암노루

 

아랫마을 골짝에

홀로 와서

 

흐르는 냇물에

목을 축이고

 

흐르는 구름에

눈을 씻고

 

하얗게 떠 가는

달을 보네

 

청록집, 을유문화사, 1946

 


 

박목월[朴木月, 1915.1.6~1978.3.24] 시인

본명은 영종(泳鍾). 1916년 경상남도 고성(固城)에서 출생하여 경상북도 경주(慶州)에서 자람. 1935년 대구 계성(啓聖)중학 졸업. 정지용(鄭芝溶)에 의해 1939년 문예지 《문장(文章)》에 시가 추천되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청록집(靑鹿集)』(3인시), 『경상도가랑잎』, 『사력질(砂礫質)』, 『무순(無順)』 등과 수필집으로 『구름의 서정』, 『밤에 쓴 인생론(人生論)』 그밖의 저서로는 『문학의 기술(技術)』, 『실용문장대백과(實用文章大百科)』 등이 있음. 1953년 홍익대학교 조교수, 1961년 한양대학교 부교수 및 1963년 교수, 1965년 대한민국 예술원(藝術院) 회원, 1968년 한국시인협회 회장, 1973년 시전문지 『심상(心像)』의 발행인, 1976년 한양대학교 문리과대학장 역임. 자유문학상, 5월문예상, 서울시문화상, 국민훈장 모란장 등을 수상. 1978년 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