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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오상순 시인 / 표류(表流)와 저류(底流)의 교차점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2. 16.

오상순 시인 / 표류(表流)와 저류(底流)의 교차점

원제 : 표류(表流)와 저류(底流)의 교차점(交叉點)

 

 

비가 내린다

좌악 좍 내린다

내가 내린다

좌악 좍 내린다

비도 나도 아닌데

좌악 좍 내린다.

 

소리가 흐른다

좌알 좔 흐른다

내가 흐른다

좌알 좔 흐른다

소리가 내가 한결에

좔 좔 흐른다

소리도 나도 아닌데

좌알 좔 흐른다.

 

노래가 흐른다

촤알 촬 흐른다

내가 흐른다

촤알 촬 흐른다

노래가 내가 한결에

촬 촬 흐른다

노래도 나도 아닌데

촤알 촬 흐른다.

 

빛깔이 흐른다

무지개 빛깔이 솨 솨 흐른다

내가 흐른다

무지개 빛깔이 솨 솨 흐른다

빛깔이 내가 한결에

솨 솨 흐른다

빛깔도 나도 아닌데

솨 솨 흐른다.

 

빛이 내린다

솨알 솰 내린다

내가 내린다

솨알 솰 내린다

빛이 내가 한결에

솰 솰 내린다

빛도 나도 아닌데

솨알 솰 내린다.

 

파도(波濤)가 움직인다

출렁 출렁 움직인다

내가 움직인다

출렁 출렁 움직인다

파도(波濤)가 내가 한결에

출렁 출렁 움직인다

파도(波濤)도 나도 아닌데

출렁 출렁 움직인다.

 

침묵(沈黙)이 움직인다

넘실 넘실 움직여 돌아간다

내가 움직인다

넘실 넘실 움직여 돌아간다

침묵(沈黙)이 내가 한결에

넘실 넘실 구비쳐 돌아간다

침묵(沈黙)도 나도 아닌데

넘실 넘실 구비쳐 돌아간다.

 

공초오상순시선(空超吳相淳詩選), 자유문화사, 1963

 

 


 

 

오상순 시인 / 한 마리 벌레

 

 

나는 본시 단세포(單細胞) 아메바

지금은 육안(肉眼)에 보이지도 않는 지극(至極)히 미미(微微)한

한 마리의 벌레 ― 정충이다

고도(高度)의 현미경(顯微鏡)으로도 겨우 발견(發見)될둥말둥한 미생물(微生物)

 

그 얄궂은 미생물(微生物)의 수없는 분열(分裂)과 통일(統一)―

통일(統一)과 분열(分裂)―

그리고 또 분열(分裂)과 통일활동(統一活動)의 발전과정(發展過程)을 밟아

드디어 우주(宇宙)를 상징(象徵)한 완전한 조직체(組織體)를 구성(構成)하고

우주(宇宙)의 초점(焦點)인양

우주(宇宙)를 대표하는 우주(宇宙)의 주인공(主人公)으로서 그 놀라웁고 엄청난 총명(聰明)과 예지(叡智)와

의욕(意慾)은 구경(究竟)

우주(宇宙)의 단세포(單細胞)인 원자(原子)를 발견(發見)하고

그 원자(原子)를 파괴(破壞)하여

무(無)로 돌릴 수 있는 이법(理法)을 발명(發明)하고 재주를 부림으로서

두렵고 끔찍한 천재적(天才的) 마력(魔力)의 비밀(秘密)을 여지(餘地)없이 발휘(發揮)하고 폭로(暴露)하였거니

오! 한 마리 벌레의 절대(絶對)한 마력(魔力)이여!

오! 명일(明日)의 우주(宇宙)와 인류(人類)의 새로운 운명(運命)을 창조(創造)하고 개척(開拓)할 자(者)

그 누구이뇨

오! 역시(亦是)나 너 한 마리 벌레인저!

 

공초오상순시선(空超吳相淳詩選), 자유문화사, 1963

 

 


 

오상순 [吳相淳, 1894.8.9 ~ 1963.6.3] 시인

1894년 서울에서 출생. 호는 공초(空超). .1906년 경신 학교(儆新學校) 졸업. 1918년 도시샤(同志社) 대학 종교철학과 졸업. 1920년 김억(金億), 남궁벽(南宮壁), 염상섭(廉想涉), 변영로(卞榮魯), 황석우(黃錫禹) 등과 함께 《폐허》의 동인으로 그 창간호에 〈시대고와 희생〉이라는 글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1924년 보성 고등 보통 학교의 교사를 거쳐 1930년 불교 중앙 학림(동국 대학교의 전신) 교수 역임. 1954년 예술원 종신회원. 1959년 예술원상, 1962년 서울특별시문화상과 대통령상 등을 수상. 1963년 지병으로 사망. 주요작품으로 「한잔술」, 「첫날밤」, 「방랑의 마음」, 「허무혼의 선언」, 「폐허의 낙엽」 등이 다수 있음. 저서로는 死後 발간된  《오상순 시선》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