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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고원 시인 / 물너울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2. 21.

고원 시인 / 물너울

 

 

서 있는 자리가

바람이 되게 하고

물도 되고 달빛도

되게 하는 목

            소

            리.

물마루 달무리가 합쳐서

너울너울하다가

속삭이는 빛깔로

아무리 멀어도 안

                  에

                  서

목소리가 산다.

 

물너울, 창작과비평사, 1985

 

 


 

 

고원 시인 / 물방울

 

 

먼 길 가다 가다

물을 비우고

세상 비우고

울어 울어 눈물

가득해지면

다시 비고

○ ○

○ ○

○ ○

방울에서 이응 받침 리을 받침

훌훌 다 떼내버리면

방울은 뚝뚝 떨어지는

바우로구나. 그러면

물방울은 바위가 돼서

밀물에도

서는구나.

 

다시 만날 때, 범우사, 1993

 

 


 

 

고원 시인 / 바람꽃

 

 

봄은 다만

  기다림 속에

    흩어지는 계절.

 

마음의 진동이 먼저 있어

또 세찬 바람은 일고.

기억 저쪽 산마루에

부옇게 바람꽃이 핀다.

꽃보다 고운 바람길에

아득한 거리감이 물결친다.

 

바람꽃은

  꽃을 잉태한

    바람의 가쁜 숨결.

 

달이 풍기고 간 체취가

구름에 묻어 아롱질 때

구름은 속절없이

나비의 날개를 덮고.

나비는 젖은 꽃가루에

인종(忍從)의 불을 지펴 본다.

 

기다림 속에 이미

흩어진 계절이라는데,

나비야, 숫제 이제

꽃밭보다 바다로 가라.

 

꽃을 잉태한

  바람의 가쁜 숨결도

지금은 산을 넘어

  천천히 바다로 간다.

 

눈으로 약속한 시간에, 정신사, 1960

 

 


 

고원(高遠.1925∼2008.1.20) 시인

본명 고성원(高性遠). 충북 영동 출생. 혜화전문(현 동국대학교) 영문과 졸업. 영국 런던대, 퀸메리대 수료. 중고등학교 교사, 통신사ㆍ신문사 기자 등에 종사하고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사무국원으로 일한 적도 있다. 한국시인협회 사무간사,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사무국장 역임. 미국 캘리포니아대 교수 역임. 1954년 시지(詩誌) [시작(詩作)]을 창간, 주재, 1955년까지 6집을 발간하여 1950년대 기단의 일각을 빛냈다. 1952년 피난지 부산에서 이민영, 장호와 더불어 3인 시집 <시간표 없는 정거장>에 <연착된 막차>를 발표한 이래 많은 시집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