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옥 시인 / 낙엽(落葉)
맵고 차운 서리에도 붉게 붉게 타던 마음 한가닥 실바람에 떨어짐도 서럽거늘 여보소 그를 어이려 갈구리로 검나뇨
떨어져 구을다가 짓밟힘도 서럽거든 티끌에 묻힌 채로 썩을 것을 어이 보오 타다가 못 다 탄 한을 태워 줄까 하외다
초적(草笛), 수향서헌, 1947
김상옥 시인 / 다보탑(多寶塔)
불꽃이 이리 튀고 돌조각이 저리 튀고 밤을 낮을 삼아 정 소리가 요란터니 불국사(佛國寺) 백운교(白雲橋) 위에 탑이 솟아오른다.
꽃쟁반 팔모 난간(欄干) 층층이 고운 모양! 그의 손 간 데마다 돌옷은 새로 피고 머리엔 푸른 하늘을 받쳐 이고 서 있다.
초적(草笛), 수향서헌, 1947
김상옥 시인 / 대역(代役)의 풀
허구헌 날, 서울의 구정물을 다 받아 내리던 청계천(淸溪川) 육가(六街). 그 냇바닥을 복개(覆蓋)한 시멘트 위로 고가도로(高架道路)가 놓이고, 그걸 또 받쳐 든 우람한 교각(橋脚). 그 교각(橋脚)의 틈서리에 한 포기 강아지풀이 먼지 묻은 바람을 맞아 나부끼고 있었다. 시멘트 아스팔트로 덮인 서울은 풀씨 하나 묻힐 곳도 없는데, 이 교각(橋脚)의 강아지풀은 온갖 가냘프고 질긴 목숨들을 스스로 대신(代身)하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날아와 떨어진 씨앗이던가? 이 강아지풀은 또 좁쌀보다 작은 그의 씨앗을 실오리 같은 줄기 끝, 흰 다갈색(茶褐色) 털 속에 달고 있었다.
묵(墨)을 갈다가, 창작과비평사,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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