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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진경 시인 /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 서로에게...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3. 10.

김진경 시인 /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 서로에게...

원제 :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 서로에게 고통뿐일지라도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

서로에게 고통뿐일지라도

벗이여, 형제여, 사랑하는 사람이여 어서 오게나

지금은 우리가 고통으로 서로를 아는 때

지금은 우리가 상처로 서로를 확인하는 때

지금은 우리가

가슴에 박힌 가시 철조망으로 서로를 부르고

흐르는 피로 끈끈하게 하나가 되는 때

형제여, 그러니 어서 오게나

이제 밤은 너무도 깊어

우리 살아 있음의 표지조차 어둠 깊이 사라져가고

이제 고통만이 살아 있음의 유일한 척도이어라

오게나

이 밤엔 고통도 성스러워라

그것이 이 어둠을 건너

우리를 부활하게 하리니

첫 새벽에 그것이

우리의 빛나는 보석임을 알게 되리니

사랑하는 사람이여

형제여

어서 오게나

그대 움푹 패인 수갑자국 그대로

그대 고통에 패인 주름살 그대로

우리 어떠한 것에도 고개 숙이지 않고

오직 서로에게 고개 숙여 서로의 상처에 입맞추느니

이 밤엔 고통만이 성스러워라

어서 오게나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

서로에게 고통뿐일지라도

그것이 이 어둠을 건너

우리를 부활하게 하리니

 

우리시대의 예수, 실천문학사, 1987

 

 


 

 

김진경 시인 / 지금 이 밤은

 

 

지금 이 밤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신열에 들떠 뒤척이는 소년수의 희미한 신음이 어둠에 뒤섞이고

해남이라든가 형벌처럼 가난한 고향을 떠나오던 날의 기억이

신열 속에 죽음처럼 떠오르는 이 밤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떠돌던 서울의 낯선 골목과 골목들

주린 배와 충혈된 눈을 찌르는 기나긴 노동의 기억에

가위눌려 소스라치는 사람아

긴 한숨 속에 떠오르는 불꽃, 이 불꽃의 밤은

 

이 밤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머나먼 서울길 잠깐 본 아들의 얼굴로는

차마 돌아설 수 없어 떠도는 타관의 밤

신기루처럼 찬란하게 솟은 빌딩 밑 가로등 아래

허리굽은 어머니, 어머니의 밤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어둠의 바닥 깊이 거대한 물고기처럼 가라앉은 서대문의 추운 이 밤은.

까마득한 칠흑의 높이에서는 헛된 신기루의 무리

화려한 매음과 음모가 들끓는 허공

밑, 어둠의 바닥 찢기고 버려진 확실한 고통과 사랑의 골고다여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어디인가 그곳은

그 새벽 어둠이 우리를 토해낼 언덕

뜨거운 불꽃이 우리를 단련하는 그때는 언제인가

우리의 절망과 버려짐, 상처와 고통들이 단단한 불꽃으로 타오를 그 언덕은 어디인가

깊은 고통의 성스러운 밤이여

 

우리시대의 예수, 실천문학사, 1987

 

 


 

김진경(金津經.1953.4.9∼ ) 시인

충남 당진 출생. 대전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 사범대 국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74년 [한국문학] 신인상 시 당선. 우신고교, 양정고교 교사. 양정고교 재직 중이던 1985년 '민중교육지 사건'으로 구속되어 1년 2개월간 수감생활을 했으며, 이후 교육운동에 투신했다. [오월시] 동인. 전교조 초대 정책실장, 참교육실천위원장, 통일시대교육영눅소 소장, 계간 [교과연구] 발행인, 문학계간 [삶, 사회 그리고 문학] 발행인, 대통령비서실 교육문화비서관, 대통령 자문정책기획위원 등 역임.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통일시대교육연구소 소장 역임. 2000년 12월 시집 <슬픔의 힘>으로 제5회 시와시문학 작품상 수상. 2006년『고양이 학교』로 프랑스 제 17회 앵코뤼브티블 수상. 2007 한국문학 시부문 신인상.

청소년 문학 <굿바이 미스터 하필> <우리들의 아름다운 나라>시집 <광화문 지나며>(풀빛.1986) <지구의 시간> <갈문리 아이들(청사.1984)> <우리 시대의 예수(실천문학사.1987)> <별빛 속에서 잠자다>(청비.1996) <슬픔의 힘(문학동네.2004)> 소설<이리>(실천문학사.1998) 동화집 <은행나무 이야기>(문학동네.1998) <한울이 도깨비 이야기>(우리교육,2000) <스스로를 비둘기라고 믿은 까치>(문학동네.2000)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