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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경 시인 /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 서로에게... 원제 :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 서로에게 고통뿐일지라도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 서로에게 고통뿐일지라도 벗이여, 형제여, 사랑하는 사람이여 어서 오게나 지금은 우리가 고통으로 서로를 아는 때 지금은 우리가 상처로 서로를 확인하는 때 지금은 우리가 가슴에 박힌 가시 철조망으로 서로를 부르고 흐르는 피로 끈끈하게 하나가 되는 때 형제여, 그러니 어서 오게나 이제 밤은 너무도 깊어 우리 살아 있음의 표지조차 어둠 깊이 사라져가고 이제 고통만이 살아 있음의 유일한 척도이어라 오게나 이 밤엔 고통도 성스러워라 그것이 이 어둠을 건너 우리를 부활하게 하리니 첫 새벽에 그것이 우리의 빛나는 보석임을 알게 되리니 사랑하는 사람이여 형제여 어서 오게나 그대 움푹 패인 수갑자국 그대로 그대 고통에 패인 주름살 그대로 우리 어떠한 것에도 고개 숙이지 않고 오직 서로에게 고개 숙여 서로의 상처에 입맞추느니 이 밤엔 고통만이 성스러워라 어서 오게나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 서로에게 고통뿐일지라도 그것이 이 어둠을 건너 우리를 부활하게 하리니
우리시대의 예수, 실천문학사, 1987
김진경 시인 / 지금 이 밤은
지금 이 밤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신열에 들떠 뒤척이는 소년수의 희미한 신음이 어둠에 뒤섞이고 해남이라든가 형벌처럼 가난한 고향을 떠나오던 날의 기억이 신열 속에 죽음처럼 떠오르는 이 밤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떠돌던 서울의 낯선 골목과 골목들 주린 배와 충혈된 눈을 찌르는 기나긴 노동의 기억에 가위눌려 소스라치는 사람아 긴 한숨 속에 떠오르는 불꽃, 이 불꽃의 밤은
이 밤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머나먼 서울길 잠깐 본 아들의 얼굴로는 차마 돌아설 수 없어 떠도는 타관의 밤 신기루처럼 찬란하게 솟은 빌딩 밑 가로등 아래 허리굽은 어머니, 어머니의 밤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어둠의 바닥 깊이 거대한 물고기처럼 가라앉은 서대문의 추운 이 밤은. 까마득한 칠흑의 높이에서는 헛된 신기루의 무리 화려한 매음과 음모가 들끓는 허공 밑, 어둠의 바닥 찢기고 버려진 확실한 고통과 사랑의 골고다여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어디인가 그곳은 그 새벽 어둠이 우리를 토해낼 언덕 뜨거운 불꽃이 우리를 단련하는 그때는 언제인가 우리의 절망과 버려짐, 상처와 고통들이 단단한 불꽃으로 타오를 그 언덕은 어디인가 깊은 고통의 성스러운 밤이여
우리시대의 예수, 실천문학사,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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