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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종해 시인 / 항해일지 4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3. 9.

김종해 시인 / 항해일지  4

 

 

상어는 이 도시의 어느 건물 안에서도 몸을 숨기고 있는 것이 보였지만

정작 나는 갑판 위에서 작살을 날리지 못하였다.

날마다 작살의 날을 시퍼렇게 갈고 또 갈았지만

나는 작살을 쓸 수 없었다.

무엇인가 그물에 걸려서 퍼덕일 것 같은 번쩍임의 예감을 끌어올리기 위하여

날마다 을지로나 청계천으로 노를 저어가지만

헛일이었다. 아아, 헛일이었다.

눈은 와서 이미 겨울 바다는 서쪽으로 서쪽으로 기울어지고

석유는 얼마 남지 않았다.

그물 사이로 빠지는 눈 오는 바다를 금전출납부 위에 올려놓고

아침마다 도장으로 눌러대지만,

계산기 위에 결제서류의 숫자를 두드리고 또 두드리지만,

한 장의 방한복으로 추위를 가린 젊은 수부의 항로는 어디로 열려 있나.

상어가 출몰하는 흉흉한 바다,

그물을 물어뜯고 배를 뒤엎어놓는 저놈의 상어,

음흉한 상어는 이 도시의 어느 건물 안에서도 몸을 숨기고 있었지만

아아, 나는 왜 작살을 날려 저놈의 심장을 꿰뚫지 못하나.

춥고 어두운 겨울 항로 가운데

오늘은 한 젊은 수부가 사는 화곡동에 닻을 잠시 내리고 잔을 나누다.

 

항해일지, 문학세계사, 1984

 

 


 

 

김종해 시인 / 항해일지  6

 

 

암초를 보았다

청계천이나 을지로, 삼일로나 종로

혹은 퇴계로의 어느 쪽이거나

노를 저어가는 곳마다 그것은 불쑥불쑥 머리를 내밀었다.

뿌리를 내리지 않은 어뢰마냥 둥둥 떠서

그것은 나의 배 곁에 따로 다가와 있었다.

항해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은

저 절대적인 힘의 덫을 우회하기 위하여

나는 한낮에도 날개를 접고 돛을 접고

점화하는 일마저 삼가야 한다

저 암초에 부딪혀 부질없이 사라져간

어리석은 수부들을 생각하라

우리가 날마다 떠 흐르는 바다 위에서

상하고 으깨어진 일이 어디 이것뿐이랴

진달래.개나리가 그리운 오늘은

선창을 활짝 열고

4월에 침몰했던 젊은 수부들의 혼을 떠올리다.

 

항해일지, 문학세계사, 1984

 

 


 

 

김종해 시인 / 항해일지  7

 

 

을지로 쪽을 날마다 항해하다가 느낀 일이지만 나는 바람 한 점 없는 이 고요한 바다에서 해적들을 불러 모으리라 작심하였다. 을지로 2가에서 닻을 내리고 한밤중에 자주 나는 이 부근에 가라앉았던 해적선을 인양하려 했지만, 마하트마 간디가 갖고 있을 법한 해저 케이블에 걸려 쓰러지기를 여러 번 하였다. 퇴계로 목에서 흐르는 물살을 타고 1960년 4월에 가라앉았던 수부(水夫)들이 갑판 위로 어슬렁거리며 걸어 나오는 시각에 황량한 바다를 항해하고자 하는 해적들과 함께 나는 안개 자욱한 이 항구에서 무적(霧笛)을 울리고 싶었던 것이다. 목발을 짚은 이 시대의 절름발이들, 애꾸눈이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보물을 싣고, 의(義)와 사랑을 선창 가득히 싣고, 개인적인 우수(憂愁)를 존중할 줄 아는 해적선의 수부들과 함께 날카롭게 이 시대의 물살을 가르고 싶었던 것이다.

 

항해일지, 문학세계사, 1984

 

 


 

김종해 시인

김종철 시인의 형으로 부산에서 태어난 김종해는 1963년 『자유문학』 신인상에 시 「저녁」이 당선되고, 이어 1965년 『경향신문』 신춘 문예에 시 「내란(內亂)」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다. 1966년 첫 시집 『인간의 악기(樂器)』를 펴낸 그는 『현대시』 동인으로 활동한다. 그는 이 뒤로 시집 『신의 열쇠』(1971) · 『왜 아니 오시나요』(1979), 장편 서사시 『천노(賤奴), 일어서다』(1982), 시집 『항해 일지』(1984) · 『바람부는 날은 지하철을 타고』(1990) · 『별똥별』(1994) 등을 펴낸 바 있다. 그는 1982년에 ‘현대 문학상’을 받은 데 이어 1985년에 ‘한국 문학 작가상’ 한국시협회상 등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