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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완 시인 / 어느 시인(詩人)에게
야윈 볼 시멘트벽에 문지르며 당신이 부르던 이름을 아무도 못 듣게 가만히 나도 불러 봅니다. 비겁한 나와 용기 없는 우리 대신 겨울 숲에 이르러 숨져 가는 햇살 한 올기가 고목을 끌어안고 사랑하는 그 이름의 뺨에 눈물 바르며 당신의 아내마저 흐느끼게 하고 시대의 어느 끝으로 바람이 붑니다. 불러도 돌아오지 않는 그것들을 항아리에 쓸어 담아 소금 비벼 섞으며 행주에 눈물 적셔 접시를 닦습니다. 그릇의 크기는 타고나는 것인지 황토 구덩이에 나를 묻고 당신은 오늘 내가 한 줄의 시(詩)로써 썩어 가는 사실을 자꾸 부끄럽게 만들었읍니다. 부끄러워 불조차 못 켜고 어두운 창 바라보니 새벽 가까운 어디쯤서 당신의 어린 딸 웃는 소리 들리고 어둠 밖으로 빠져 나가는 골목 안 사람들의 발소리도 들립니다. 용기로운 자만이 기다릴 수 있다는 말 설움을 아는 자만이 기다릴 수 있다는 말 당신을 대신하여 비겁한 내가 듣고 용기 없는 우리가 대신 듣습니다.
인동일기, 창작과비평사, 1978
김창완 시인 / 우리 옆집 그 여자
그리하여…… 그 여자 순대장사 시작했지 먼지 바람 잘 날 없는 시장바닥에 그 여자, 내장 꺼내 도마 위에 올려 놓지
그리하여…… 그 여자 기름때에 절어 갔지 손도, 앞치마도, 세월까지도 순대보다 시커멓게 타버린 사랑마저 인제는 칼로 베도 아프지 않지
썰어서 팔아 버린 내장 길이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 그 여자도 모르지 논둑처럼 꾸불텅, 밭둑처럼 꾸불텅 고향까지 갈 것인가, 저승까지 갈 것인가 밤중까지 돼지창자 까뒤집는 그 여자
돼지처럼 먹고 자고, 아무렇게나 살았지 사람들께 살점 모두 발라 내주고 인제는 창자까지 썰어서 파는 순대장사 벌인, 우리 옆집 그 여자 그리하여…… 그 여자, 새벽마다 식칼 쓱쓱 갈지.
우리 오늘 살았다 말하자, 실천문학사, 1983
김창완 시인 / 우리 오늘 살았다 말하자
중복과 말복 사이 햇볕 불타는 오후 두 시를 살가죽에 불붙는 제 그늘 제가 잡아먹는 불볕 속을 오늘을 우리는 살았다고 말하자
늘어진 혀로 갈라진 입술로 타들어가는 목청으로 햇살보다 따가운 환한 진실로 말하자 땀보다 짜게 사랑보다 더럽게 오늘을 우리는 살았다고 말하자
시멘트와 땀을 섞고 햇빛과 자갈을 섞고 목마름과 모래를 섞고 굳어지는 것은 벽돌이 아니라 오기와 구덕살과 악이라고 말하자
리어카 끌며 살았다고 말하자 벽돌짐 져올리며 살았다고 말하자 미싱을 돌리며 생선을 팔며 사실은 몸뚱이도 팔았다고 말하자
다시 한 번 곱씹어 말하자 헐린 집터에는 맨드라미 피었더라 팔아넘긴 입주권에는 도장밥이 피었겠지 하늘은 푸르고 구름은 희고
놀은 붉겠지 혈육은 나뉘었다 그리움은 아직도 햇살보다 뜨겁다고 말하자 마른 입술로 불타는 목청으로 사막이 된 가슴으로
우리 오늘 살았다 말하자, 실천문학사,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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