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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환 시인 / 바다, 내 언어들의 희망 또는 그 고통스러운 조건·42 ―그 우주 최초의 별
2017년 10월 하와이대 연구팀은 천체망원경 Pan-STARRS1을 이용해, 처음으로 태양권 바깥에서 날아온 외계소행성 1I/2017 U1을 포착한다 담배 형상을 한 그것은 거문고자리의 직녀성 근처에서 쌍곡선을 그으며 날아와, 지구와 화성 사이를 비껴 지나고 있다 정밀 관측 결과 탄소를 포함한 금속질로 구성된 1I/2017 U1은 현재 지구로부터 2억㎞ 정도 떨어진 채, 8.14시간마다 자전을 하면서 시속 13만 8천㎞로 비행한다 2018년 5월 목성궤도를 스치고, 2019년 1월 토성궤도를 지나고, 2022년 해왕성궤도를 넘는다 태양권을 완전히 빠져나가는 데 2만 년이 걸린다 이 소행성은 다시 수천만 년 동안 우주방사선에 피폭되며, 성간(星間)의 어둠과 추위 속을 항행할 것이다
그해 강릉발 청량리행 무궁화호 열차의 객실 안이 그녀와 나눈 마지막 공간이었다 그녀는 낮은 분홍빛 힐을 또각거리며, 통로를 빠져나가 열차에서 내렸다 플랫폼을 거쳐, 이내 희미한 눈발 날리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아니, 그랬을 것이다 내가 외계소행성 1I/2017 U1의 기사를 읽으며, 불현듯 20년 가까이 된 그해 겨울의 그녀를 떠올린 까닭은 무엇일까
내가 끝까지 참다 가까스로 그녀를 돌아봤을 때는 그녀가 열차문을 막 밀고 나가는 순간이었다 그녀도 하마 나를 돌아본, 어쩌면 나를 돌아보려 했던 것일까 아주 짧은 시간 내 시야를 희미한 눈발처럼 곡두처럼 하마 비낀 그녀의 옆얼굴, 어쩌면 그녀의 눈빛 그녀의 모습은 적잖이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내용을 기억 못하는 슬픈 꿈에서 깨어난 직후 망막을 가르는 꿈의 일말(一抹)처럼, 아슬하고 아득하게 남아 있다
천체망원경 안에서 소행성 1I/2017 U1은 우주의 어둠과 우주의 추위를 희미한 눈발처럼 곡두처럼 비끼고 있었다 그것은 비공식적으로 ‘Oumuamua’라 불린다. 하와이말로 ‘ou’는 ‘손을 뻗어 잡으려하다’, ‘mua’는 ‘처음’이라는 뜻을 품는다 그러니까 그것의 닉네임은 ‘처음으로 손에 잡힐 듯하다’라는 의미겠다 그때 나는 서울에 당도하기까지 고개조차 들지 못한 채, 내내 그녀가 남기고 떠난 빈 좌석만 응시하였다 창백한 형광등이 비추는 빈 좌석의 발 시린 어둠 내게 ‘처음으로 손에 잡힐 듯하다’는 ‘앞으로도 손에 잡히지 않을 듯하다’라는 뜻으로 읽혔다
소행성 1I/2017 U1은 궤도이심률 1.20의 쌍곡선을 그으며 페가수스자리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다 다시 지구를 찾는 일은 영영 있을 리 없다 그날 그녀를 만난 것은 그녀와 헤어진 지 15년 정도 지난 뒤였다 나도 그녀도 그 무렵까지 사랑한다는 말을 한 차례도 입에 올린 적이 없었다 그녀가 남기고 떠난 발 시린 어둠에 소슬한 그림자처럼 묻혀, 내가 오래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만 까닭은 무엇일까 그때 내가 처음으로 그녀에게 발각되었을지 모른다는 속절없는 초조함 때문만은, 그녀가 처음으로 나에게 발각되었을지 모른다는 가슴 떨리는 서러움 때문만은 아니었을 테다
그것은 천체망원경 Pan-STARRS1의 뷰파인더 속에서 발각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황막한 우주공간의 가장 캄캄한 어둠과 절대온도에 가까운 추위 속을 홀로 운행할 것이다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최초의 별은 수소와 헬륨 두 원소의 증기로 들끓는다 그것은 빅뱅 이후 1억 년이 지나, 우주의 필라멘트네트워크 구조 접합부위에서 생겨난다 이온과 전자와 광자 들이 밀집한 플라스마 속에 탄생한 우주 최초의 존재 나는 정말 뜬금없게도 희미한 눈발 같은 곡두 같은 저 소행성 1I/2017 U1이 해쓱한 쌍곡선을 그으며, 언제까지든지 그 우주 최초의 별을 향하리라 생각했다
월간 『공정한시인의사회』 2018년 4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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