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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해 시인 / 항해일지 28 부제: 한려수도 물길에 사량도(蛇樑島)가 있더라
사량도 눈썹 밑에 노오란 평지꽃이 눈물처럼 맺힌 봄날 나도 섬 하나로 떠서 외로운 물새 같은 것이나 품어주고 있어라 부산에서 삼천포 물길을 타고 봄날 한려수도 물길을 가며 사랑하는 이여 저간의 내 섬 안에 쌓였던 슬픔을 오늘은 물새들이 날고 있는 근해에 내다 버리나니 우는 물새의 눈물로 사량도를 바라보며 절벽 끝의 석란으로 매달리나니 사랑하는 이여 오늘은 내 섬의 평지꽃으로 내려오시든지 내 절벽 끄트머리 한 잎 난꽃을 더 달아주시든지
항해일지, 문학세계사, 1984
김종해 시인 / 항해일지 30
정박등을 켜고 임시로 닻줄을 내린 곳 서초동, 그러나 아직도 안개고 밤이다 봄은 선미(船尾) 끝으로 물결처럼 사라지고 한 평의 바다도 얻지 못한 채 저 피안의 수풀과 꽃잎은 사라져가는구나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날마다 별로 떠 있어 이승의 노질이 서툴지 않구나 한 사람의 별, 한 사람의 새 한 사람의 섬 이런 단순한 사랑의 말을 읽기 위해 오늘도 갑판 위에 나와 등피를 닦다
―그리워하는 일 하나로 화재가 있었다고 나는 쓴다 ―사랑하는 일 하나로 화재가 있었다고 나는 쓴다
항해일지, 문학세계사, 1984
김종해 시인 / 회항
겨울비 내리는 새해의 첫주말 나는 너를 보려고 김포에서부터 날아올랐다 내가 가진 두 장의 은빛 날개 두 눈을 감고서도 고향 가는 길을 나는 안다 육신을 벗어난 영혼의 날기 그리움의 날기 나는 너를 보려고 시시때때 기체를 활주로로 끌어낸다 저 조그만 지상의 불빛이 우리 살아 있음의 사랑의 주소 겨울꿈들이 구름으로 떠올라 있는 네 하늘 위에서 그러나 나는 일순 멈칫거린다 접근 금지. 겨울 폭우 속에 빗장을 굳게 잠근 네 공항 위에서 몇 바퀴 돌고 돌다가 네 얼굴 언저리 두 뺨 위를 돌고 돌다가 깜빡이는 비행등을 달고 회항하는 겨울의 내 사랑아
바람부는 날은 지하철을 타고, 문학세계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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