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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종해 시인 / 항해일지 28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3. 14.

김종해 시인 / 항해일지 28

부제: 한려수도 물길에 사량도(蛇樑島)가 있더라

 

 

사량도 눈썹 밑에 노오란 평지꽃이

눈물처럼 맺힌 봄날

나도 섬 하나로 떠서

외로운 물새 같은 것이나

품어주고 있어라

부산에서 삼천포 물길을 타고

봄날 한려수도 물길을 가며

사랑하는 이여

저간의 내 섬 안에 쌓였던 슬픔을

오늘은 물새들이 날고 있는

근해에 내다 버리나니

우는 물새의 눈물로

사량도를 바라보며

절벽 끝의 석란으로 매달리나니

사랑하는 이여

오늘은 내 섬의 평지꽃으로 내려오시든지

내 절벽 끄트머리

한 잎 난꽃을 더 달아주시든지

 

항해일지, 문학세계사, 1984

 

 


 

 

김종해 시인 / 항해일지 30

 

 

정박등을 켜고 임시로 닻줄을 내린 곳

서초동, 그러나 아직도 안개고 밤이다

봄은 선미(船尾) 끝으로 물결처럼 사라지고

한 평의 바다도 얻지 못한 채

저 피안의 수풀과 꽃잎은 사라져가는구나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날마다 별로 떠 있어

이승의 노질이 서툴지 않구나

한 사람의 별, 한 사람의 새

한 사람의 섬

이런 단순한 사랑의 말을 읽기 위해

오늘도 갑판 위에 나와 등피를 닦다

 

―그리워하는 일 하나로 화재가 있었다고 나는 쓴다

―사랑하는 일 하나로 화재가 있었다고 나는 쓴다

 

항해일지, 문학세계사, 1984

 

 


 

 

김종해 시인 / 회항

 

 

겨울비 내리는 새해의 첫주말

나는 너를 보려고

김포에서부터 날아올랐다

내가 가진 두 장의 은빛 날개

두 눈을 감고서도 고향 가는 길을 나는 안다

육신을 벗어난 영혼의 날기

그리움의 날기

나는 너를 보려고

시시때때 기체를 활주로로 끌어낸다

저 조그만 지상의 불빛이

우리 살아 있음의 사랑의 주소

겨울꿈들이 구름으로 떠올라 있는

네 하늘 위에서

그러나 나는 일순 멈칫거린다

접근 금지.

겨울 폭우 속에 빗장을 굳게 잠근

네 공항 위에서 몇 바퀴 돌고 돌다가

네 얼굴 언저리

두 뺨 위를 돌고 돌다가

깜빡이는 비행등을 달고 회항하는

겨울의 내 사랑아

 

바람부는 날은 지하철을 타고, 문학세계사, 1990

 

 


 

김종해 시인

김종철 시인의 형으로 부산에서 태어난 김종해는 1963년 『자유문학』 신인상에 시 「저녁」이 당선되고, 이어 1965년 『경향신문』 신춘 문예에 시 「내란(內亂)」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다. 1966년 첫 시집 『인간의 악기(樂器)』를 펴낸 그는 『현대시』 동인으로 활동한다. 그는 이 뒤로 시집 『신의 열쇠』(1971) · 『왜 아니 오시나요』(1979), 장편 서사시 『천노(賤奴), 일어서다』(1982), 시집 『항해 일지』(1984) · 『바람부는 날은 지하철을 타고』(1990) · 『별똥별』(1994) 등을 펴낸 바 있다. 그는 1982년에 ‘현대 문학상’을 받은 데 이어 1985년에 ‘한국 문학 작가상’ 한국시협회상 등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