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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황금찬 시인 / 현장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3. 13.

황금찬 시인 / 현장

 

 

이 순간 직전의 일체를 나는 모른다.

 

병실 사벽면이 살아서 나를 향해 축소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 생각할 여유도 없다.

나는 병실 밖으로 뛰어나왔다.

거리의 고층건물들이 나를 향해 움직이며, 부서져내리는 것이다.

나는 지금 방향을 모르며 달리고 있다.

그러다가 지금 직전을 잊은 순간 길가에 서 있다.

 

수천 수만의 쥐들이 내게 달려든다.

쥐들은 내 몸을 마음대로 할퀴고 물고 늘어진다.

나는 내 목덜미에서, 가슴에서, 머리에서, 손에서

쥐들을 떼어 동댕이치고 발로 차며 손을 흔들고

온몸에 불이 붙어 오듯 어쩔 수가 없다.

위대한 사람은 웃고 지나가고

아이놈들은……미친 놈이라고 돌을 던진다.

나는 돌과 쥐를 피해 어느 골목에 숨는다.

 

현장, 청강출판사, 1965

 

 


 

 

황금찬 시인 / 흙

 

 

흙은

호수에 돌아가는 물살 같은

연륜을 지니고 있다.

 

숱한 나무와 풀들이 발을 붙이고

하늘을 받들며 꽃을 피우고

수많은 짐승들이 묻히고

또 대를 이어나고 한다.

 

해 잘 드는 어느 산자락에 집을 모아 살던

삼한이며 또 삼국이 가고 다시 삼국이 이어가고

한때는 구름처럼 피어오르던 고려

눈물과 극한으로 흘러간 이조, 흙으로 갔다.

역사의 실마리가 풀리기 비롯하던 전날부터

흙에서 샘이 솟고, 열매와 곡식이 익었다.

 

어느것 하나 흙의 땀과 기름의 결정이 아니리요.

수목이 흙 속에서 살듯

나도 흙을 받들며 흙 속에서 살겠다.

흙은 내 어머니의 나라, 영원한 어머니

나를 불러 내었고, 다시 나를 불러갈 곳

그리고 내 어머님이 흙에서 왔다 흙으로 돌아갔다.

혹은 하늘이요, 별이요, 구름이요, 바람이요,

산이요, 들이요, 돌이요, 물이요, 보석이요, 생명이다.

 

나는 보았다.

긴 역사를 두고, 참으로 긴 역사를 두고

부질없이 흙을 패역하는 사람들과

옛 이야기처럼 훌러간 사연들을

그러나 해가 오고 해가 가는 속에서

흙은 한갓 침묵하고 있다.

 

별이 있는 밤, 양림사, 1983

 

 


 

 

황금찬(黃錦燦) 시인

 

 

한국 현대문학의 산증인이셨던 고 황금찬 시인은 1918년 8월10일 강원도 양양군 도촌면 논산리(현 속초시 조양동)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가난 때문에 8세에 고향을 떠나 북간도를 돌아 함경북도 성진에 정착하여 소학교를 다니며 성장하셨고 1939년 일본으로 문학공부를 떠나 학비를 벌기 위해 부둣가에서 노동으로 뼈를 깎는 고통을 겪으며 다이도(大東)학원을 다니다 중퇴하고 4년 후 성진으로 돌아온 후 노동운동을 하시다가 6.25전쟁으로 자유를 찾아 월남하셨습니다.

 

문학을 하게 된 동기는 1926년(14살) 당시 냉면 한 그릇 값(10전)이었던 잡지 '아이생활'(후 '새벗')을 어렵게 사서 보던 중에 시인이 되기로 결심하셨다고 합니다. 그 후 김동환의 '국경의 밤'이 실렸던 잡지 '삼천리'의 많은 영향을 받으셨다고도 했습니다. 1946년 강릉농업중학교 교사가 되었으며 1947년 월간 '새사람'에 시를 두 번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1951년 강릉에서 동인 '청포도 동인회'를 결성하여 문학동인지의 지평을 열었으며 이듬해 1952년 청록파 박목월 시인의 추천을 받아 1964년 추천 완료되어 '문예'와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하셨습니다.

 

많은 문인들과 교류하면서 1959년 '관동문학' 강원도 문학의 기틀을 마련하시고 강릉사범학교, 인창고등학교를 거쳐 서울 동성중고등학교에서 30여 년간 국어 교사를 지냈으며 중앙신학대학교와 강남대학교, 추계예술대학교에서 문학(시)을 가르쳤습니다. 1979년 서정시의 보급을 위해 '공간 시낭독회'를 조직하여 현재의 시낭송으로 확장 발전되었는데 그 후 오랜 기간 '해변시인학교'를 이끌며 각종 TV 교양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하여 한국 시문학을 널리 알리는데 크게 공헌하셨습니다.

 

1965년 처녀시집 '현장'을 시작으로 '오월 나무'(1969), '나비와 분수'(1971) 등 39권의 시집과 행복과 불행 사이등 25권의 산문집을 펴내며 최고령 최다작의 열정적인 문인으로 국민 시인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선생님께 가장 애착이 가는 시(시집)가 무엇인가 여쭸더니 선생님의 대표시 100선을 실은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라 하시면서 자신의 대표시는 '보리고개'와 제가 가장 좋아하는 '별과 고기'라 하셨습니다.

 

황금찬 시인은 암울한 일제시대, 6·25전쟁, 4.19혁명 등 현대사의 수많은 굴곡을 겪으며 연약한 저항으로 어둠을 밀어내는 촛불처럼 참 시인으로 살아왔습니다.

 

문학광장 상임고문으로서 늘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고 '황금찬시맥회'를 인증하시며 '자연사랑 인간사랑'의 맥을 이어가기를 조용히 바라셨습니다.

 

사람들은 황금찬 시인을 기독교 사상과 향토적 정서가 담긴 순수 서정시와 지적 성찰이 담긴 시를 썼다고 하며 '자유와 정직의 시인', '무공해와 시와 소박미의 시인'이라 말합니다. 그렇게 맑은 영혼을가진 시인이셨습니다.

 

황금찬 시인은 "시는 천사가 사용하는 지혜의 전술이다. 시는 절대 선하고 아름다워야 한다. 시를 통해서 우리의 언어를 순화하고 우리의 정서를 순화하고 생활의 예지를 얻게 된다."고 하시며 진실로 우리말을 사랑했고 시를 매일매일 새벽 까지 열심히 쓰셨던 참으로 시를 사랑한 시인이셨습니다.

 

시인 황금찬

1918년- 8월 10일 강원도 속초에서 출생.(호: 后白)

학력 일본 다이도오 학원 중퇴

1948년 「새바람」,「기독교 가정」에 시 발표

1953년- 『문예지』와『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1946 ~ 1978년- 강릉농고, 서울동성고, 강릉사범 교사

1965년 처녀시집『현장』

1968 ~ 1980년 중앙신학대 기독교문학과 교수

1980 ~ 1994년 추계예술대, 숭의여전 한국신학대 강사

1981년 추계예술학교 강사, 해변시인학교장

1993년- 시마을 출판 대표 등 역임

 

시집

『음악이 열리는 나무』『噴水와 나비』『보릿고개』『영혼은 잠들지 않고』『 조국의 흙 한 줌과 아름다운 죽음』『고향의 소나무』 외 36권 발간

 

산문집

1965 첫 산문집 『실용문장법』을 비롯해『고독이 만든 그림자』 『나의 서투른 인생론』등 24권의 산문집과 그 외 시론집, 시감상집 발간

 

수상경력

월탄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한국기독교문학상, 서울시문화상,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등 수상

대한민국 문화보관 훈장 그 외 다수

 

 


 

황금찬 시인(黃錦燦 1918년-2017년)

1918년 강원 속초시 출생. 1947년 ,새사람>에 처음으로 시를 발표하였고 1951년 시 동인 '청포도'를 결성했다. 1953년 <문예>지에 <경주를 지나며>가 추천되어 정식으로 등단했다. 1965년 첫 시집 <현장>을 낸 이후 2008년 <고향의 소나무>까지 거의 매년 시집을 낼 정도로 왕성한 창작을 해왔다. 1948~78년에 강릉농업고등학교, 서울 동성고등학교 교사를 역임했고, 1978~80년 중앙신학대학 기독교문학과 교수, 1980년~94년에는 추계예술대학, 숭의여자전문대학, 한국신학대학에서 강의했다. 1996 대한민국문학부문문화예술상. 1992 문화의 달 보관문화훈장. 1990 서울시 문화상. 1982 한국기독교 문학상. 1973 월탄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