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윤의섭 시인 / 애사

by 파스칼바이런 2020. 3. 13.

윤의섭 시인 / 애사

 

 

내가 꾸는 가장 긴 꿈은 너와의 일초에 대해서일 것이다

그 순간 너는 무한대의 집을 지은 것이다 오늘은 남은 삶의 첫날이라며

사소한 선택일 뿐이라고 했지만 바깥은 없고 내부만 있는

지극히 인간적인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한 때였다

어떤 종말론적인 말이 발음되는 시간은 일초도 걸리지 않는다

죽어버려 미친 끝이야 세상이란 넌 그래서 그래서 아파 사랑해

이제 이초와 삼초로 이어지지 않는 가장 폐쇄적인 일초에 대해 궁리할 수 있다

 

무엇이 나였던가요

저 꽃 저 달 아니면 저 무수한 죽음

 

잘못된 질문이에요

나는 단지 별을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대답을 못했지만 한 가지는 알고 있었다

영원이 알 수 없는 건 스스로의 시간뿐이라는 것을

 

우리가 본 별은 자신을 불태우는 중입니다

초신성 상태를 넘어서면 일초도 안 되는 사이에 별의 씨앗을 뿌리도록 운명지어진

별이란 원래 외로운 종족입니다

별에게 종말은 외로움의 또 다른 증식입니다

 

일초만의 붕괴 일초만의 완결 일초만의 극단 일초만의 시말 일초만의 영겁

말하자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시간이 있다

 

내가 꾸는 가장 긴 꿈은 너에 대해서일 것이다

꿈자리는 향기로운 꽃밭을 넘나드는 나비처럼 별자리를 오가는 네가 은닉하기로 한 집이어서

나는 깰 수 없다

죽었다면 더는 죽지 말기를

 

월간 『시와 표현』 2018년 5월호 발표

 

 


 

윤의섭 시인

1968년 경기도 시흥에서 출생. 아주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 同 대학원에서 박사학위 취득. 1992년 《경인일보》 신춘문예와 1994년 《문학과 사회》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말괄량이 삐삐의 죽음』(문학과지성사, 1996), 『천국의 난민』(문학동네, 2000), 『붉은 달은 미친 듯이 궤도를 돈다』(문학과지성사, 2005) , 『마계』(민음사, 2010),  『묵시록』(민음사, 2010) 등이  있음.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 역임. 현재 대전대학교 교수이며, 〈21세기 전망〉 동인으로 활동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