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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안민 시인 / 도로적(道路的) 강박관념

by 파스칼바이런 2020. 3. 13.

안민 시인 / 도로적(道路的) 강박관념

ㅡ 이상에게

 

 

  방문 앞에 당도했다 도로를 질주한 아이들

  곧 내 몸 안으로 우르르 쏟아질 것이다

 

  당신은 금지되었으므로 공중전화는 무릎처럼 가까울 수도

  은하처럼 아득히 멀 수도 있다 스산한 13

  지난겨울의 저승이 오늘이라고 주홍 색깔로 표기해 둔다

 

  내 몸 안의 내륙에도 도로가 놓여 있다는 걸

  아이들은 이미 눈치챘다 어른들의 전생 같은 눈을 가졌으니

 

  감시당하는 자는 감시에 익숙하다 폐병 환자처럼

  허공에 길을 닦기 위해 동전을 많이 바꿨다고 들었다

  체포 이후 죄가 만들어지는 카프카적 거리의 공포

  동전 속 인물이 어둠으로 얼굴을 던질 때

  아이들이 도로를 다시 질주하게 될 거다

 

  거울을 이해하기 위해 거울 속에 동공을 빠트린다

  강조하자면 도로는 의도적이고 계획적이어야 한다

  13 이후를 기약하고는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장전한다

  아드리느의 실탄 모양 각본대로 흘러야 하기 때문이다

 

  총구는 위험하므로 얼굴 빛깔이 참새 다리 같다

  당신의 도로에도 곧 닿게 되겠지 13인의 아이 중 몇몇

 

  공중전화 부근에서 봄이 우수수 떨어진다

  아름다운 자궁에도 포말이 일겠지 젖은 노을이

  골목 안쪽까지 널린다

  길은 막다른 골목이든 뚫린 골목이든 상관없다

 

  세상의 하체는 13인의 아이를 닮아가며 낡아가고 있다

  남자와 여자는 각각 몇 마리인가?

  도로의 질료는 죽음 같은 잠

  눈을 감으면 아스팔트 색깔로 깜깜하고

  잿빛 기하학이 차선 모양 흐른다

  그러니까 감은 눈이 켜질 때를 가장 조심해야 하는 법

  죽은 꽃이 피어나려 할 때 우는 여자를 사랑해선 안 된다

 

  불안한 아이가 나의 몸에서 전화기의 몸을 거쳐

  당신 몸까지 질주하려 한다

 

  공중전화 수화기는 스스로 제 목에 줄을 감고 있고

 

계간 『시산맥』 2013년 겨울호 발표

 

 


 

안민 시인

경남 김해에서 출생하여 부산에서 성장. 동국대학교 회계학과 졸업. 2010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 2013년 제2회 웹진 《시인광장》 신인상 당선. 시집으로 『게헨나』(현대시, 2018)와 『아난타』(모든시, 2019)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