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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창완 시인 / 첫눈 오는 밤에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3. 11.

 김창완 시인 / 첫눈 오는 밤에

 

 

나보다 마음 약한 새침떼기들이

스스로 모질구나 모질구나 생각하면서

 

하늘은 어디 갔나 하늘은 어디 갔나

우리 다닐 길 모두 없애 버리고

세상의 길은 오직 하나

하나만으로 모아서 남기려 하네

 

산 속의 노루는 무슨 꿈 꿀까

길 아닌 곳만 골라 다닌 그 발 오그리고

무슨 꿈 꿀까 무슨 꿈 꿀까

내 못난 근심처럼 흔들리면서

눈은 내리고 쌓이려 한다

길 없이도 멋대로들 잘도 내려서

길과 풀섶의 경계도 없애 버리고

 

죽은 풀잎 흔들며

너도 죽었니?

깊이 든 잠 뿌리의 잠 깨우는

눈은 내려서 쌓이려 한다

 

다 잠든 다음에도 꿈길 비껴 내려서

나보다 고운 말만 골라 쓰는 이들이

세상의 모든 길을 없애 버리면서

나보다 고운 말만 골라 쓰는 이들이

 

우리 오늘 살았다 말하자, 실천문학사, 1983

 

 


 

 

김창완 시인 / 통일로 코스모스

 

 

너희들 여태 여기서 떠도느냐

작년에도 여기서 모가지만 늘이더니

한가위 아니라도 거닐고픈 그 거리

어째서 귀향 열차 남으로만 가느냐

 

파편 맞아 죽은 이는 빨강꽃으로

배고파 죽은 넋은 하양꽃으로

벼 익어 누런 들판 너희 논 버려 두고

여지껏 피난살이 끝나지 않았느냐

어째서 귀향 열차 남으로만 가느냐

 

이 길 따라 하루면 가고 남을 마을 두고

코스모스, 야위어 가는 슬픈 넋이여

해맑은 햇살 속 한가위 달빛 속

너희들 여태 여기서 떠도느냐

어째서 귀향 열차 남으로만 가느냐

 

우리 오늘 살았다 말하자, 실천문학사, 1983

 

 


 

 

시인 김창완(1942. 7. 19. ~ )

 

 

김창완(1942)은 1970년대 초반 목포시단에 젊은 패기를 불어넣었던 리얼리스트다. 그는 주정연과 함께 김지하의 이미지와 부분적으로 겹친다. 그가 김지하의 민중정신과 괘를 함께 하고 있다면, 주정연은 김지하의 풍자정신·꼿꼿한 선비정신과 서로 겹친다.

 

신안 태생으로 어린 시절 장산도 해변에서 바닷물에 발을 적시며 놀던 그는 이후 목포로 나와 문학청년기를 보내다가 1973년 상경, 현재에 이르기까지 거친 세상의 바다를 떠돌고 있다. 1966년 주정연·정영일·박광호 등과 함께 동인회 「흑조」를 결성했던 그는 197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던 해에 서울로 이주하여 변두리를 전전하다가,

 

1975년 정호승·이종욱·하종오·권지숙·김명인 등과 함께 동인지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반시」 동인회를 결성, 우리시단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우리시의 낡은 속성을 깨뜨리며 리얼리즘을 기저로 '쉬운시 운동'을 펼쳤던 이들은 그러나 80년대 중반 이후 해체되면서 현재로선 김명인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가 문학적 이정표를 잃고 헤매거나 주저앉아 버렸다. 아쉽지만 김창완도 예외가 아니다.

 

1978년 첫 시집 『인동일기』를 펴낸 그는 이후 『우리 오늘 살아있다 말하자』(1984)·『별을 따는 여자들』(1990) 등을 펴냈으나 시단의 주목을 받는데 실패했고, 시작 활동 또한 미미했다. 이제 그의 이름은 「반시」 동인의 한 사람이었다는 정도로 기억되고 있다.

 

인용한 시는 비교적 성공적인 시집으로 평가되는 첫 시집에 실린 것으로, 고향을 떠나 "돌멩이" 하나로 세상을 떠도는 그의 자화상과 시정신의 변화를 한꺼번에 읽을 수 있다. 보충 설명을 하자면, 목포에서 쓰여진 그의 습작기 시들은 「반시」 동인 참여 이후의 시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필자는 주로 풍융한 상상력에 기대어 고향 바다의 서정을 노래한 그의 초기시들에서 동향의 선배 시인인 최하림의 시풍을 어렵지 않게 발견한다. 그러나 출향 이후 서울의 외곽지대에 포진하면서 노동과 가난을 두루 경험한 그의 시는 완전히 민중주의로 무장하게 된다.

 

시 "돌멩이"는 그의 자아가 투사된 시적 대상이기도 하지만 '민중'이라는 보편적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그의 시적 자아가 장산도 바다에서 드넓은 민중의 바다로 뛰쳐나간 것이다. 그도 한때 고루무변한 "보수주의자"였으나 뿌리 뽑힌 자들과 체험을 공유하면서 "그들과 같이 살고자 원"하는 민중주의자 혹은 자유주의자로 바뀐다는 진술이 그것이다.

 

그 "고향 버린" 흔하고 천하고 못난 "돌멩이"들은 그러나 아무 짝에나 쓸모 없거나 나약하지 않다. 시인은 "돌멩이"의 속성을 역사적 상상력에 의해서 재창조한다. 그것은 따라서 "날개 없이도 날 수 있"어 자유롭고, 거만한 "유리창"과 "넓고 환한 이마"도 깨뜨릴 만큼 단단하며,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어깨를 움추리지 않을 만큼 끈질기고 강인하다. 따라서 "돌멩이"는 민중의 무기요 민중 그 자체인 것이다.

 

김창완의 시는 신화처럼 출렁이는 그의 고향 바다와 현실의 바다 사이를 오가며 떠 있다. 그러나 그도 결국 근원의 파도가 손짓하는 장산도의 품에 안길 것이다. 그것이 자연의 길이다.

 

 


 

 

김창완 시인 (1942. 7. 19. ~ )

호는 금오(金烏). 전남 신안군 출생. 광주 조선대 국문과 졸업. 1973년 [서울신문] 신춘 문예에 <개화>가 당선되고, 같은 해 [풀과 별]에 <꽃게> 등의 시가 추천되면서 등단함. "반시" 동인. 1980년 [소설문학] 편집장, 1982년 [여원] 편집장, 1989년 [조선일보] 가정조선부장, 1994년 동 기획출판부장 등 역임. 시적 경향은 척박한 현실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의 조용하지만 값진 의미를 친숙하고 서정적인 어조로 노래하고 있다. 작품에는 <겨울바다> <인동일기> <소금장수의 재주> < 비평사, 1978)』『우리 오늘 살았다 말하자(실천문학사, 1984) 』 《나는 너에게 별하나 주고 싶다》(자유문고, 200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