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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혜 시인 / 문둥탈춤 1
쿵기덕 쿵더 더러러 쿵―쿵 쿵더 덩―더
차라리 가슴에 수부룩한 봉인(封印)을 뜯지요 마지막 믿을 수 있는 포기가 받아들여진다
시간을 살려낸다고 잃었던 감각을 여기 와 머물게 하고 허위의 처방은 심지째 뽑아 버린다
빛이라고 가져온 자존심은 부채일 뿐 별 것도 아닌 쉬운 것이고 샅샅이 헐었던 몸 구석에서 보이지 않던 얼굴이 한정을 깨뜨려 태어나고 싶어한다.
떠돌이별, 현대문학사, 1984
김초혜 시인 / 문둥탈춤 2
살아 있음으로 몰래 변장을 했지만 너의 모습은 나의 벌받은 모습이다
가죽만 살아 숨쉬는 나는 살아 있듯 죽어 있고 겉만 죽은 너는 피를 설레게 하는 그리움인 것을
닳아져 나가고 흐려져 뒹굴어도 절름절름 잊을 수 없는 웃음은 돌아와 내 속에 살고
생명이 먼지 되어 흐르는 아픔은 넓은 원을 그리며 바람이 되고 나로써 가득 찬 기도는 살기 위해 죽는 누가 그린 악몽인가.
떠돌이별, 현대문학사, 1984
김초혜 시인 / 문둥탈춤 5
쿵기덕 쿵더 더러러 현실적 시간의 허무와 영광을 쿵―쿵 쿵더 덩―더 풀고 헤치고 끄르고 이으며
쿵기덕 쿵더 더러러 새로 열릴 리 없는 빛의 무리는 쿵―쿵 쿵더 덩―더 운명의 감각을 다 해방시키고
쿵기덕 쿵더 더러러 망각에의 속죄가 되게 하여 쿵―쿵, 쿵더 덩―더 갈라진 삭신의 무질서를 녹이는 음조를 낳게 하네
쿵기덕 쿵더 더러러 무심과 무관심의 방법을 알게 하시고 쿵―쿵 쿵더 더러러 만성된 상처를 추상으로만 남게 하소서
쿵기덕 쿵더 더러러 추상으로 남은 몸을 텅 비게 하시고 쿵 쿵 쿵더 더러러 신성(神性)으로 얽힌 목숨으로만 채우게 하소서.
떠돌이 별, 현대문학사, 1984
김초혜 시인 / 백자(白瓷)
빛으로 충만한 그대 이마에 맑은 피는 고여 흐르고
속눈썹 깊은 숲으로 금빛 광채 나는 길이 열리네
소망으로 참아낸 밤하늘에 꽃은 피고 은실의 실오락지에 흐르는 삼천년(三千年) 역사
그 흰 꽃엔 식은 피 덥히는 눈물이 등불 되어 환희 켜져 있네.
떠돌이 별, 현대문학사, 1984
김초혜 시인 / 사랑굿 1
그대 내게 오지 않음은 만남이 싫어 아니라 떠남을 두려워함인 것을 압니다
나의 눈물이 당신인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체 감추어 두는 숨은 뜻은 버릴래야 버릴 수 없고 얻을래야 얻을 수 없는 화염 때문임을 압니다
곁에 있는 아픔도 아픔이지만 보내는 아픔이 더 크기에 그립고 사는 사랑의 혹법(酷法)을 압니다 두 마음이 맞비치어 모든 것 되어도 갖고 싶어 갖지 않는 사랑의 보(褓)를 묶을 줄 압니다.
사랑굿 1, 문학세계사,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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