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천 시인 / 걸어가는 사람
더러는 휘어지고 더러는 꺾인 겨울 연밭 얼키설키 몸을 포갠 적요를 바라보며 연상되는 자코메티 전
뼈대만 남은 앙상한 몸 비정상적인 커다란 발 성난 듯 허망한 듯 어딘가를 바라보는 강렬한 시선 쓰러질 듯 위태롭게 걸어가는 사람
살을 다 발라낸 생선 가시처럼 빈한한 실존 앞에 명치 끝이 아프다
살아있다는 것은 직립을 포기하지 않는 것 걸어간다는 것은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것 바라본다는 것은 미지의 세계를 향한 모험
존재는 이 모든 것을 버렸을 때 다다를 수 있는 정수(精髓) 아닌가
소멸 이후 어둠은 알 수 없지만 그래서 두렵지만 군더더기 없는 깡마른 몸으로 너머의 세계를 응시하면서 성큼성큼 걸어간다
생은 직진이니까
계간 『예술가』 2019년 가을호 발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이현호 시인 / 세상의 거의 모든 순간 (0) | 2020.03.11 |
|---|---|
| 정영선 시인 / 파묻힌 사람 (0) | 2020.03.11 |
| 김혜순 시인 / 납작납작 외 2편 (0) | 2020.03.11 |
| 김초혜 시인 / 문둥탈춤 1 외 4편 (0) | 2020.03.11 |
| 김창완 시인 / 첫눈 오는 밤에 외 1편 (0) | 2020.03.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