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김초혜 시인 / 사랑굿 6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3. 12.

김초혜 시인 / 사랑굿   6

 

 

제가 저를 괴롭히는

마음이라는 것

목도 조이고

혀도 되어서

죄의 큰 그물을 엮어

뿌리를 먼저

삭게 한다

 

자르고 베어도

잊힐 리야 없을

그대 향한

나의 마음

어둠인 듯 감추었다가

흔들림 없게

크게 빛내이고 싶다

 

태울 듯 불 붙을 듯

멍에 멘 마음에

그대 넘나들지 마시고

더러 생각나거들랑

가다가 멈추어 서서

못 잊는 내 허물

탓하지나 마시라

 

사랑굿 1, 문학세계사, 1985

 

 


 

 

김초혜 시인 / 사랑굿  21

 

 

쓰러지고 쓰러지고

다 쓰러지고

다시 네 앞에 일어나

쓰러지고

불시에 불구가 되어

눈물이사

그대 내 살 속에

풀어 놓은 징벌

 

우리 목숨의 분량은

얼마나 남았나

건강한 매무새로

모두 퍼낸 다음

떠밀리는 물결이 아니게

꽃배를 타고 싶다

 

다감(多感)을 사루어 버린

지금은 작별의 때

새롭게 감기는

밧줄을 끊고

출항을 하련다

 

떠나 보내며

어쩌면 외로울지 모르는

나의 그대여

날으는 새가 되어

그때 만나자.

 

사랑굿 1, 문학세계사, 1985

 

 


 

 

김초혜 시인 / 사랑굿  25

 

 

너와 내가 합쳐져

하나의 별이 되자

아무도 못 보게

억만 광년 빛으로

반짝거림이 되자

 

입이 메어지도록

고통이 들어차도

변덕부림 없이

나뉘인 육신을

서로 잡아주자

 

제일로 가까운

첫번째의 별에

집을 짓고 맹목을 심어

태양도 여기에선

쉬어가게 하자

 

아무 것도 모르는

무재주를 사랑하며

차 있으나

넘쳐 흐르지 않는

순한 불이 되자.

 

사랑굿 1, 문학세계사, 1985

 

 


 

 

김초혜 시인 / 사랑굿  30

 

 

바다는 비를

다시 받아들여도

넘치지 않고

흙은

물을 마시어도

물이 아니어듯

눈 먼 영혼을 가진 그대여

나의 헌납을

속박없이 받으시라

 

나의 오감(五感)은

그대에게 가는 빛을

막지 못하고

수렁에 빠져도

새롭게 접목되며

너로 가득 차고 싶다

무엇으로 바꾸지 않을

나의 오욕을

아름답게 견뎌내며

묶인 채 자전(自轉)하리라.

 

사랑굿 1, 문학세계사, 1985

 

 


 

 

김초혜 시인 / 사랑굿  31

 

 

멀어서 있는 그대

그대는

시작이고 끝이다

끝과 시작은

언제나 내게 머물러

일어서게 하고 허물어지게 하고

그대

나를 위해 울어준다면

해도 지지 않고 달도 뜨지 않는다

눈[目]도 아니고 혀도 아닌

너의 암시는

네게 악성(惡性)만 자라게 해

하루에 밤을 두번 있게 한다

새벽이 두번 있는

하루를 기다리며

사랑 없이 사랑하리라

 

사랑굿 1, 문학세계사, 1985

 

 


 

김초혜 시인 ((金初蕙) 1943 ~ )

소설가 조정래씨의 부인으로 1943년 9월 4일, 서울 출생. 청주여고.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64년 현대문학 '길' 등단. 2008 제20회 정지용문학상. 1985 제18회 한국시인협회상. 1984 제21회 한국문학상 수상. 한국현대시박물관 관장. 한국여류문학회 이사. 가정법원 조정위원. 한국문학 편집장 역임. 시집으로 《떠돌이 별》,《사랑굿 1》,《사랑굿 2》,《사랑굿 3》,《세상살이》 등이 있으며, 소설가 조정래 작가와 부부 사이다. 월간 한국문학 편집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