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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란 시인 / 감자
어디선가 한 물질이 왔다
그 물질이 감자의 생각에 닿아 싹을 틔운다. 싹은 감자를 둘러싼다. 처음의 감자는 썩어 없어진 채 여기 있다
싹은 꽃과 낙화를 동시에 품는다. 꽃은 느낀다, 몸을 간지럽히는 게 주어진 최대치의 사랑이란 걸. 나비는 꽃을 첫눈에 알아보기 위해 태어난다
감자를 심은 건 물, 물은 형태를 바꾸며 감자를 지나고 물을 건너 감자 바깥으로 나간다. 감자의 생각도 물길 따라 갈라지고 이동한다
최초의 싹과 감자가 가장 멀리 있을 때 꽃이 감자를 연다. 꽃은 다른 감자를 보려는 눈. 눈물을 통해 낯선 세계가 보일 때 꽃은 감자를 닫는다
감자는 감자가 되기 위해 낙화를 물고 뿌리 깊은 곳을 파고 들어가 중심을 분해하고 생각을 녹인다
감자에 땅이 나고 하늘 나고 감자에 싹이 나고 잎이 나고
계간 『모:든 시』 2019년 가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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