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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문덕수 시인 / 새의 나라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3. 15.

문덕수 시인 / 새의 나라

 

 

모란순(牡丹筍)이 새의 몸짓을 하고

시냇물이 새의 울음을 운다.

모두가 새를 닮아간다.

큰 별이 하나

꽃밭 같은 은하수를 밀고 가다가

새가 되어 날았다.

행방불명이 된 누나와

빌딩과 수상(首相),

그리고 광화문 네거리의 빈 리어카.

누구는 역전(驛前)의 육십 계단(六十 階段)을 오르다가

누구는 무교동 사잇길을 걷다가

공작이 학(鶴)이 비둘기 제비 멧새가

되었다는 얘기

강물처럼 넘실거리고,

일 년쯤 늦게사 돌아온 석조(石棗)꽃.

나무도 사람도 차(車)도

날아오르고 싶으면

모두 새가 되었다.

 

새벽바다, 성문각, 1975

 

 


 

 

문덕수 시인 / 생각하는 나무

 

 

나무는 어딘지 먼 길을 가고 있다

가다가 가만히 머뭇거리며 고독을 느낀다

가지를 흔든다 무엇인가 골똘히 사유한다

보이지 않는 지맥(地脈)에까지 어쩔 수 없는 몸부림을 전한다

안으로 지닌 생명의 그지없는 중량을 가뜩히 느껴 본다

받들어 숨쉬는 하늘과 구름과… 산새의 무게를 균형(均衡)해 본다

먼 불안의 방황에서 돌아오듯

이제 숨막히는 긴장을 푼다

한 잎 두 잎 목숨을 떨어뜨린다

가볍고 서운한 안으로 충만해 오는 희열(喜悅)이 있다

가지를 휘감아 올리는 비상(飛翔)의 흐느낌이 있다

발가벗은 채,

나무는 귀를 기울여본다

 

황홀, 세계문화사, 1956

 

 


 

 

문덕수 시인 / 선(線)에 관한 소묘(素描) 1

 

 

선(線)이

한 가닥 달아난다.

실뱀처럼,

또 한 가닥 선(線)이

뒤쫓는다.

어둠 속에서 빛살처럼 쏟아져 나오는

또 하나의, 또 하나의, 또 하나의

또 하나의

선(線)이

꽃잎을

문다.

뱀처럼,

또 한 가닥의 선(線)이

뛰쫓아 문다.

어둠 속에서 불꽃처럼 피어나오는

또 한 송이, 또 한 송이, 또 한 송이

또 한 송이, 또 한 송이

꽃이

 

찢어진다.

떨어진다.

거미줄처럼 짜인

무변(無邊)의 망사(網紗),

찬란한 꽃 망사(網紗) 위에

동그만 우주가

달걀처럼

고요히 내려앉다.

 

선공간, 성문각, 1966

 

 


 

문덕수(文德守) 시인

1928년 경상남도 함안 출생. 호는 심산(心山), 청태(靑笞)이다. 홍익대학교 국문과 및 고려대학교 대학원 졸업. 1956년 {현대문학}에 <침묵>, <화석>, <바람 속에서>가 추천되어 등단. 1964 현대문학상•1978 현대시인상•1981년 아카데미 학술상•1985 펜문학상 수상. 시집: {황홀}(1956), {선(線)·공간(空間)}(1966), {새벽바다}(1975), {영원한 꽃밭}(1976), {살아남은 우리들만이 다시 6월을 맞아}(1980), {다리놓기}(1982), {문덕수시선}(1983), {조금씩 줄이면서}(1985), {그대, 말씀의 안개}(1986) 등. 현재 홍익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