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 시인 / 백두파(白頭波)
그것은 순수(純粹)라는 이름으로 추켜올린 교만한 예술가의 머리카락을 휘어잡은 어느 거칠은 화가의 손바닥 같은 것.
영원(永遠)을 치닫는 긴 여로(旅路)에서 스스로의 콧등을 할퀴고 나비 같은 몸매로 자맥질하는 저 무희(舞姬)의 뒷발꿈치.
밤이여 이제는 나를 더 흔들지 말라. 상황은 의식 밖에 있는 열 두 굽이 물결인 것을.
날아라 아침의 새들이여, 예전사, 1985
황명 시인 / 분수(噴水) 1
Ⅰ
오죽하면 하늘을 우러러 스스로의 노여움을 자제(自制)하는 저 묵시(?示)의 입김은 얼마나 거룩한 종교 같은 것이라야 할까.
Ⅱ
일찍 하늘로 승화(昇華)하지 못한 먼 태고(太古)적 우리 어버이들의 눈물이 마침내 영원과 맞서는 자리에 찬란한 무지개를 피우듯 아기찬 우리들의 의욕으로 되살아 오르는가.
Ⅲ
언제고 한번은 끝없는 강물을 이루고 싶은 마음에서 우러러 오던 하늘이여, 해여, 달이여, 별이여, 지금은 모두가 나에게로 어울려 드는 이 창업(創業)의 경이(驚異) 같은 아, 청청히 나의 가슴을 굽이치는 강물아.
날아라 아침의 새들이여, 예전사, 1985
황명 시인 / 분수(噴水) 4
지금은 또 한번 결의(決意)를 가다듬어야 한다.
옛날의 아쉬운 언덕에서 철없이 뒹굴어 떨어져 간 나날들.
가고 아니 오는 것은 할아버지의 상여 같은 강물
―그 뒤에서 복재기 노릇을 하는 나, 나는 흐르고―
1950년 6월을 아는 사람은 쳐들고 있던 고개를 숙이고
어쩌면 살륙의 광장 같은 지구로 하여 잊을 수 없는 죄업을 소리소리 하늘로 고발하는 저 목메인 절창을 들어라.
날아라 아침의 새들이여, 예전사,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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