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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황명 시인 / 분수(噴水) 5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3. 1.

황명 시인 / 분수(噴水) 5

 

 

이 얼마나

우람한 풍경이냐

 

빗발치는 아우성의 대열

그 속에서 피는

꽃.

 

어쩌면 사랑이 철철 넘치는

절정(絶頂)의

기(旗).

 

살기(殺氣)에 찬 눈에는

핏발이 되어라

 

서러움에 겨운 눈에는

눈물의 화신(化身)

 

살아서 사랑하고 싶은 사람에는

날렵한 입김을 주어라

 

이 얼마나

우람한 풍경이냐.

 

날아라 아침의 새들이여, 예전사, 1985

 

 


 

 

황명 시인 / 분수(噴水) 6

 

 

저러히 숨차게 밀려가는 군중.

그 속에서도

초점을 잃지 않는

너의 눈매를 지금

태양이 사격을 시작한다.

 

손을 휘저으며 너무나 밝은

빛을 거부하는

너는

천년 이끼 낀 한 그루

탑의 변신.

 

언제나 목마른 발돋움으로

솟구치는 버릇이 그대로 굳어 버린

너의 키는

도도(滔滔)한 의상을 입었구나

 

그러나, 워낙

무거운 것도 아니면서

가벼운 것도 더욱 아닌

오늘.

 

너의 앞에 서면

이처럼 크나큰 설레임을

내가 느끼는 것은

웬 일인가.

 

날아라 아침의 새들이여, 예전사, 1985

 

 


 

 

황명 시인 / 분수(噴水)

 

 

그것은

오늘을 넘어서

눈물과 한숨을 거부하는

의욕(意欲)의 효시(嚆矢).

 

싱싱한 심장(心臟)으로 하여

목숨의 기꺼운 보람을 겨누고

뒤미치는 핏발

아니면 불결이었다.

 

도시 기막힌 이야기나

미칠 듯 그리운 이름일랑

제마다의 가슴 속에

--먼 훗날의 아름다운 기억을 위하여--

한개 비석(碑石)을 아로새겨 두자.

 

지금 여기 살륙의 휴식시간 같은

더 없이 불안한 지역에서도

비둘기는

방향을 찾아야 하고

 

어쩔 수 없이 지표(地表)가 실색(失色)한

이렇듯 황량한 뜰에서도

무궁화는

다시금 피어야 한다.

 

그것은

눈물이나 한숨만으로

이루어질

보람은 아니었기에……

 

내일에로 향(向)을 하여

뜨거운 입김[呼吸]과

새로운 믿음[信念]을 뿜는

우리들의

무한한 가슴이었다.

 

날아라 아침의 새들이여, 예전사, 1985

 

 


 

황명(黃命.1931.11.20∼1998.10.2) 시인

창녕군 영산면 출생. 본명 황복동. 1955년 동국대학교 국문과 졸업. 195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분수>가 당선되었다. 휘문고교 교사, 1972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이사. 문인협회 이사장 역임. 국민훈장석류장 수상. 2000년 3월 4일 시비(詩碑)가 경기 부천시 중앙공원에서 제막됐다. 문화훈장 석류장(1992), 자랑스러운 성남인상(1995), 보관문화훈장(1996) 등 수상. 1999  유고시집 <분수와 나목>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