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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서 시인 / 빙하기
내가 여전히 겨울일 때 전생엔 벚꽃이 흩날리고, 민들레 순이 택배로 왔다. 주머니 속 숨겨둔 애인이 풀숲마다 납작하게 엎드린 노란 꽃으로 번져갔고, 나는 셔터를 눌러댔다. 어디에도 없는 애인은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이 좋은 봄날에, 산책도 하고, 꽃도 만져봐야죠. 종일 가슴이 아프더니 명자꽃 망울이 디밀고 올라왔다. 뼛속 깊이에서 세찬 바람이 불어 왔다. 근데 어디가 아프셨어요? 꽝꽝 언 아이스크림 케이크는 문 밖에서 나를 기다린다. 우리 사랑의 유효기간은 93일이예요. 결제 했어요. 귀여운 이모티콘이 박힌 아이스크림 케이크 일거야. 너의 눈빛과 교환되고 싶다. 나는 네 왼편 심장으로 스며들고 싶다. 이렇게 아름다운 날. 잠시만요. 네에 말씀해보세요. 헉, 진짜요? 예쁘죠? 보이진 않지만 정말 예쁘네요. 어쩌죠. 이런 대화에는 라일락 향기가 난다. 애인은 낮게 엎드려 더욱 샛노란 꽃으로 번져간다. 우리의 유효기간을 찾느라 잠시 빙하의 온도를 측정한다. 서둘러야겠어. 하얀 홀씨가 봄바람을 타고 날아간다. 그리운 방향에서 꽃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리는 건 여전히 내가 겨울 한가운데 서 있다는 뜻이다.
격월간 『현대시학』 2019년 9~10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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