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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피천득 시인 / 1930년 상해(上海)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3. 6.

피천득 시인 / 1930년 상해(上海)

 

 

겨울날 아침에

입었던 꽈쓰*를 전당잡혀

따빙[大餠]*을 사 먹는 쿠리[苦力]가 있다

 

알라 뚱시[東西]* 치롱 속에

넝마같이 팔려 버릴

어린 아이가 둘

한 아이가 둘

한 아이가

나를 보고 웃는다

 

* 꽈스: 중국옷 상의(上衣)

** 따빙[大餠]: 호떡

** 알라 뚱시[東西]: 넝마장수(알라-외치는 소리. 東西-물건)

 

서정시집(抒情詩集), 상호출판사, 1947

 

 


 

 

피천득 시인 / 구슬

 

 

비 온 뒤 솔잎에 맺힌 구슬

따다가 실에다 꿰어 달라

어머니 등에서 떼를 썼소

 

만지면 스러질 고운 구슬

손가락 거칠어 못 딴데도

엄마 말 안 듣고 떼를 썼소

 

서정시집(抒情詩集), 상호출판사, 1947

 

 


 

 

피천득 시인 / 국민학교 문앞을 지날 때면

 

 

국민학교 문앞을 지날 때면

꾀꼬리들이 배워 옮기는 참새소리

번연히 그럴 줄을 알면서도

가슴이 뻐개지는 것 같았다

 

태극기 날리는 운동장에서

삼천리를 부르는 어린 목소리

나는 머―ㅇ하니 서 있고

눈물만이 눈물만이 솟아오른다

 

꿈에서라도 이런 꿈을 꾼다면

정녕 기뻐 미칠 터인데

나는 머―ㅇ하니 서 있고

눈물만이 눈물만이 흘러나린다

           (1945)

 

서정시집(抒情詩集), 상호출판사, 1947

 

 


 

피천득(皮千得. 1910 ~ 2007) 시인

수필가, 시인, 영문학자. 서울 출생. 호는 금아(琴兒). 상해 호강대학교(University of Shanghai) 영문과를 졸업. 1930년 "신동아"에 시 '서정소곡(抒情小曲)'을 발표하여 등단. 간결하고 섬세한 문체를 바탕으로 일상생활에서 느낀 감정을 순수하고 서정적으로 그려 낸 작품을 많이 창작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수필집 "인연", "금아 문선", 시집에 "서정 시집", "금아 시문선", "산호와 진주" 등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 경성중앙산업학원 교사로 근무하였고 광복 이후에는 경성대학 예과교수를 거쳐 1974년까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1954년에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연구하였으며 1963년부터 1968년까지 서울대학교 대학원 주임교수를 지냈다. 1991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 1995 제9회 인촌상 (문학부문). 1999 제9회 자랑스런 서울대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