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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황명 시인 / 푸른 아침에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3. 5.

황명 시인 / 푸른 아침에

 

 

이 푸른 아침에

내 창가에 날개를 조아리는

새 한 마리 있어

가만히 창을 열었더니

느닷없이 내 방, 그 눈부신 고독 속으로

분간도 모르고 들어온다.

 

시끄러운 세상보다는 숫제 내

고향 같은 아늑한 곳에 가서

책이나 읽고 싶은 마음으로

이렇게 찾아든 것일까

이 푸른 아침에.

 

날아라 아침의 새들이여, 예전사, 1985

 

 


 

 

황명 시인 / 풍경초(風景抄)

 

 

공동우물이 있는 어느 골목에서

아낙네들은 서로의 하루를 휘갑하는

저녁 보리쌀의 피부를 주무르며

상기 돌아오지 않는 권속들의

피곤에 겨운 얼굴들을 기다리는 시간에

새들은 저마다의 집 언저리를 돌면서

어제 이 골목을 온통 난장판으로 휘몰던

그 엿장수의 익살을 기다리고 있었다.

참 어처구니 없는 사람들의 기교(技巧)

그것은 모순이다.

그럴 줄 알았더면 나도 술이나 한 잔 할 것을

하필 그 엿장수만 취했고

둘레의 그 많은 사람들은 맹맹한 생정신이란 말이야

연극은 우리들의 눈에서 막이 오르고

엿장수의 가위소리와 함께 모두는

하루의 종점에 충실한 조연자(助演者)가 된다.

―자아 한잔 한 김에 까짓것 싸게 드려요……

저만큼 저녁 노을은 불꽃처럼 피어오르는데.

 

날아라 아침의 새들이여, 예전사, 1985

 

 


 

 

황명 시인 / 해바라기 단상(斷想)

 

 

오랜 편력(遍歷)을 휘갑하는 마음으로

석공은 암석을 쪼고

쪼는 석편(石片)에 흐르는 땀은

숨결이 거칠었다.

아로새기는 각수(刻手)는 지쳐서

땀방울은 흡사 화자(花瓷),

얼룩지는 무늬를 따라 석공의

빛나는 눈,

아롱아롱 물방울마다 어리는

스쳐간 얼굴 얼굴들……

조용히 눈을 감았다,

조용히 눈을 떴다,

조용히 웃음을 머금었다, 그리고

옛날 아름드리 암석을 잦기듯

얼마든지 팔을 벌리고 껴안았다, 허나

그 억센 팔에서 이제는 멀어져 간

그 여인의 치맛폭은 없었다.

 

날아라 아침의 새들이여, 예전사, 1985

 

 


 

 

시인 황명(黃命)

 

 

본명은 황복동(黃福童). 경남 창녕 태생. 1955년 동국대 국문과 졸업. 성남고 교사를 거쳐 휘문고 교사로 재직하였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출신들의 모임인 문학동우회장을 역임했고, 한국문인협회 이사와 한국문인협회 회장을 지냈다.

 

195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분수>가 당선되어 등단한 이후 <창의 미련>(1957), <비조의 주소>(1957), <생명의 주제>, <이유 없는 금고 속에서>(1958), <피뢰침의 의미>, <시장에 서면> 등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풍경초>(1966), <흔들리는 손>, <분수> 연작, <바람의 손> 등이 꼽힌다. 시집 <날아라 아침의 새들이여>(1985)를 간행하였다.

 

황명은 추상성이 강한 모더니즘적 수법으로 관조한 대상을 온건하게 표현하는 시적 세계를 보여준다. 그래서 생활주변에서 얻은 소재를 지성적으로 노래하는 개성이 강한 시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황명의 시에서는 종교와 같은 갈구와 그 갈구에 대한 기도가 상존한다. 영원의 세계를 관조하면서 많은 영감을 한 폭 무한의 가능성으로 조감하여 영원성을 찾아 나선다. 시인에게 존재하는 대상은 때로는 추상적인 암시의 굴곡을 벗어나서 새로운 완벽한 조형을 만들어 내어 온건한 심성을 절묘하게 그려낸다.

 

그의 작품은 해와 달과 하늘, 그리고 바람과 물과 자연의 모든 조형물은 의욕을 되살리게 하는 끝없는 욕망의 채찍이기도 하다. 그래서 시인의 시작품의 언어에서 온근한 받아들임을 나타내는 순결함이 있다. 황명 시

인이 추구하는 영감의 함축은 묵시적인 언어의 매력을 한 층 더 강하게 노출하는 메시지이다.

 

【경력】

1951  성남중학교 졸업

1955  동국대학교 국문과 졸업

1955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분수> 당선ㆍ등단

1955  성남ㆍ휘문고등학교 교사(∼1992)

1971  한국문인협회 시분과 이사

1972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이사

1976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강사(∼1979)

1979  한국문인협회 시분과 회장

1981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1991)

1998  문학의 해 조직위원회 집행위원장

1992  한국문인협회 이사장(∼1998)

1995  96 문학의 해 집행위원장

1996  재단법인 한국문학번역금고 발기인

1996  온겨레시조짓기추진회 고문

1996  근대문학관 건립추진위원회 위원.

1998  한국문인협회 명예이사장

1998  10월 2일 작고

1999  유고시집 <분수와 나목> 발간

 

【작품】<분수(噴水)>(동아일보.1955) <귀의(歸依)>(동국문학.1955.11) <비조(飛鳥)의 주소>(현대문학.1957.6) <창(窓)의 미련>(현대문학.1957.4) <초점 잃은 사수(射手)>(시와비평.1957.5) <분수(噴水)>(현대문학.1957.9) <나의 군상(群像)에의 열도(熱禱)>(1958) <이유 없는 금고(禁錮) 속에서>(현대문학.1958.6) <기(旗)>(현대문학.1959.7) <하강(下降)하는 일모(日暮)>(현대문학.1960.1) <피뢰침의 의미>(1962) <담천(曇天)>(현대문학.1963.5) <분수>(1964) <해바라기 단상(斷想)>(신동아.1964.9) <아침을 향할 때>(신동아.1966.6) <풍경초(風景抄)>(현대문학.1966.9) <밤 이야기>(신동아.1967.2) <상황>(현대문학.1968) <연습>(현대문학.1968.8) <백두파(白頭波)>(현대문학.1970.1) <밤ㆍ구도(構圖)>(문학.1970.1) <초원>(1973) <풍경초(風景抄)>(동국시집.1973) <초원(草原)>(한국대표시선.1973) <약속>(한국문학.1974.10) <흔들리는 손>(현대문학.1976.2)

 

【시집】<날아라 아침의 새들이여>(예전사.1985) <눈은 언제나 숨쉬는 별빛>(마을.1993)

【유고시집】<분수와 나목>(새미.1999)

【편저】<베를레느시집(詩集)>(삼성당.1975)

 

 


 

황명(黃命.1931.11.20∼1998.10.2) 시인

창녕군 영산면 출생. 본명 황복동. 1955년 동국대학교 국문과 졸업. 195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분수>가 당선되었다. 휘문고교 교사, 1972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이사. 문인협회 이사장 역임. 국민훈장석류장 수상. 2000년 3월 4일 시비(詩碑)가 경기 부천시 중앙공원에서 제막됐다. 문화훈장 석류장(1992), 자랑스러운 성남인상(1995), 보관문화훈장(1996) 등 수상. 1999  유고시집 <분수와 나목>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