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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문병란 시인 / 유행가조(流行歌調) 1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3. 5.

문병란 시인 / 유행가조(流行歌調) 1

 

 

부로크 담길 돌아서 돌아서

내 고향 팽나무 서 있는 곳에

새마을 사업 지나간 다음

심심하게 서 있는 말뚝만 남았고

장다리꽃 핀 밭두렁 가에서

처녀를 빼앗긴 순이가 보따리를 싸는데

어이할거나 꾀꼬리 암수놈

흥이 나서 미친 대낮 자지러지는데

모두 다 끼리끼리 어울리는데

헛간에 조선낫 먼드름히 걸어놓고

서울로 오입 나간 정든 머슴아

어이할거나 오월은 무장무장 짙어가는데

장광에 기대어도 문설주에 기대어도

서울로 가신 님은 영영 소식 없는데

떡갈나무 속잎 피는 영마루에서

배고픈 뻐꾸기는 자꾸만 울어쌓는데

어이할거나 김(金) 과부 속곳 속

미친 심화(心火)의 아지랑이 활활 타고

심심하게 심심하게 아름다운 대낮

장광에 기댈거나 문설주에 기댈거나

꾀꼬리는 자꾸만 신이 나는데

환장하게 환장하게 눈부신 대낮

뻐꾸기는 자꾸만 미쳐가는데

 

땅의 연가, 창작과비평사, 1981

 

 


 

 

문병란 시인 / 인생

 

 

어려서는 양지쪽에서

한줌 흙으로 만족했던 인생!

 

모래성(城)을 쌓아 놓고도

천하를 호령하는 성주

나는 언제나 왕자였네.

 

나이 들어서는

한송이 꽃을 바라보며

남몰래 가만히 한숨 쉬는 버릇

보랏빛 노을을 사랑했고,

 

아버지가 된 지금은

왜무시 크듯 쑥쑥 크는 새끼들 보며

주름살로 소슬히 웃는 버릇

씁쓰름한 소주로 목을 축이네.

 

파랑새를 찾으러 간

그날의 소년은 돌아오지 않고

저 산 너머 멀리

행복을 찾아간 소녀도 돌아오지 않고

 

어쩌다 보면

춘향이 뒷모습 같은 나의 아내

마흔일곱살이 너무 아쉬어

짐짓 나이를 두 살 줄이고

흔들리며 흔들리며 적당히 취하네.

 

아 무지개를 바라보면

아직도 내 가슴은 뛰는데……

 

땅의 연가, 창작과비평사, 1981

 

 


 

 

문병란 시인 / 전라도 뻐꾸기

 

 

싸구려 농사 내던진 억만이가

새벽 이슬 떨며 떠나간

황토빛 고갯마루에

올해도 뻐꾸기가 찾아와 운다.

 

보따리 싸버린 순이가

처녀를 빼앗긴 보리밭 너머

저수지 언덕 위에서

올해도 뻐꾸기는 찾아와 운다.

 

억만이도 떠나가고

순이도 떠나간 곳

사람들은 고향을 버리는데

순이가 벗어놓고 간

하얀 고무신 위에

눈부신 햇살만 고이는데

다시 찾아온 전라도 뻐꾸기.

이 산에서 저 산에서 울어쌓는다.

 

앞산에서 울다가

뒷산에서 울다가

이제는 공중에서 우는 소리

처음엔 한 마리가 울다가

나중엔 두 마리 세 마리

결국엔 수십 마리 수백 마리가 되어

이 산에서 뻐꾹

저 산에서 뻐꾹

억세게 억세게 울어쌓는다.

 

갑오년에도 울던 새

조병갑이가 원님노릇 하던 때도 울던 새

배고픈 우리 할배 할매

쑥죽 먹을 때도 울던 새

귀양 온 다산(茶山)님 등뒤에서도 울던 새

몇백년 울던 새가 지금도 운다

진양조 가락보다 더 슬프게

육자배기 가락보다 더 아프게 운다.

 

옥양목 적삼에 다리미 지나갈 때

누이의 등뒤에서 울던 새

새참때 밭두렁에 앉아 쉬야 보시던

할머니 등뒤에서 울던 새

저놈의 새 울어싸면 흉년만 오더라고

저놈의 새 울어싸면 난리만 나더라고

고시랑거리던 어머니 등뒤에서 울던 새.

 

올해도 뻐꾸기만 운다,

못 살고 떠나간

철이도 남이도 돌아오지 않는데

갈 곳 없는 사람들만 모여 사는 땅,

하늘만 미치게 푸른 땅에서

황토빛 무덤만 늘어가는 땅에서

백년을 울고도 남은 울음을

천년을 울고도 남은 울음을

작년에도 울고 남은 울음을

올해도 울고 남을 울음을

이 산에서 뻐꾹

저 산에서 뻐꾹

전라도 뻐꾸기만 피를 토한다.

뻐꾸기야

뻐꾸기야

울다가 울다가 시진한 전라도 뻐꾸기야.

 

땅의 연가, 창작과비평사, 1981

 

 


 

문병란(文炳蘭, 1935년~2015년) 시인

전라남도 화순 출생. 호는 서은(瑞隱). 1961년에 조선대학교 문학과를 졸업. 1962년 《현대문학》에 김현승 시인이 3회 추천 완료하여 문단에 나옴. 1988년에 조선대학교 국문과 조교수에 임용되었다가 2000년에 교수가 되었으며, 현재 명예교수. 1990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1996년 5.18기념재단 이사를 역임했다. 1979년 전남문학상을 시작으로 하여 요산문학상, 금호예술상, 광주문화예술상, 한림문학상, 박인환 시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