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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피천득 시인 / 나의 가방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3. 8.

피천득 시인 / 나의 가방

 

 

해어진 너의 등을 만지며

꼬이고 말린 가죽끈을 펴며

떨어진 장식을 맞춰도 본다

 

가을 서리 맞은 단풍이

가슴에다 불을 붙이면

나는 너를 데리고 길을 떠났다

 

눈 위에 달빛이 밝다고

막차에 너를 싣고

정처없는 여행을 떠나기도 하였다

 

늙었다―너는 늙었다

나도 늙었으면 한다

늙으면 마음이 가라앉는단다

 

서정시집(抒情詩集), 상호출판사, 1947

 

 


 

 

피천득 시인 / 너

 

 

눈보라 헤치며

날아와

 

눈 쌓이는 가지에

나래를 털고

 

그저 얼마동안

앉아 있다가

 

깃털 하나

아니 떨구고

 

아득한 눈 속으로

사라져 가는

 

생명, 1993

 

 


 

 

피천득 시인 / 단풍이 떨어지오

 

 

단풍이 떨어지오

단풍이 떨어지오

 

피빛 저 산을 보고 살으렸더니

석양에 불붙는 나뭇잎 같이 살으렸더니

 

단풍이 지오

단풍이 지오

 

바람에 불려서 떨어지오

흐르는 물 우에 떨어지오

 

서정시집(抒情詩集), 상호출판사, 1947

 

 


 

피천득(皮千得. 1910 ~ 2007) 시인

수필가, 시인, 영문학자. 서울 출생. 호는 금아(琴兒). 상해 호강대학교(University of Shanghai) 영문과를 졸업. 1930년 "신동아"에 시 '서정소곡(抒情小曲)'을 발표하여 등단. 간결하고 섬세한 문체를 바탕으로 일상생활에서 느낀 감정을 순수하고 서정적으로 그려 낸 작품을 많이 창작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수필집 "인연", "금아 문선", 시집에 "서정 시집", "금아 시문선", "산호와 진주" 등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 경성중앙산업학원 교사로 근무하였고 광복 이후에는 경성대학 예과교수를 거쳐 1974년까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1954년에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연구하였으며 1963년부터 1968년까지 서울대학교 대학원 주임교수를 지냈다. 1991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 1995 제9회 인촌상 (문학부문). 1999 제9회 자랑스런 서울대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