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천득 시인 / 나의 가방
해어진 너의 등을 만지며 꼬이고 말린 가죽끈을 펴며 떨어진 장식을 맞춰도 본다
가을 서리 맞은 단풍이 가슴에다 불을 붙이면 나는 너를 데리고 길을 떠났다
눈 위에 달빛이 밝다고 막차에 너를 싣고 정처없는 여행을 떠나기도 하였다
늙었다―너는 늙었다 나도 늙었으면 한다 늙으면 마음이 가라앉는단다
서정시집(抒情詩集), 상호출판사, 1947
피천득 시인 / 너
눈보라 헤치며 날아와
눈 쌓이는 가지에 나래를 털고
그저 얼마동안 앉아 있다가
깃털 하나 아니 떨구고
아득한 눈 속으로 사라져 가는 너
생명, 1993
피천득 시인 / 단풍이 떨어지오
단풍이 떨어지오 단풍이 떨어지오
피빛 저 산을 보고 살으렸더니 석양에 불붙는 나뭇잎 같이 살으렸더니
단풍이 지오 단풍이 지오
바람에 불려서 떨어지오 흐르는 물 우에 떨어지오
서정시집(抒情詩集), 상호출판사,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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