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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피천득 시인 / 생각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3. 10.

피천득 시인 / 생각

 

 

아침 햇빛이 창에 들어

여윈 내 손을 비추입니다

 

문갑에 놓여 있는 당신 사진에

따스한 봄빛이 어리웁니다

 

오늘도 님이여 나의 사랑은

멀리서 드리는 생각입니다

 

서정시집(抒情詩集), 상호출판사, 1947

 

 


 

 

피천득 시인 / 생명

 

 

억압의 울분을 풀 길이 없거든

드높은 창공을 바라보라던 그대여

나는 보았다

사흘 동안 품겼던 달걀 속에서

티끌 같은 심장이 뛰고 있는 것을

 

실연을 하였거든

통계학을 공부하라던 그대여

나는 보았다

 

시계의 초침같이 움직거리는

또렷한 또렷한 생명을

 

살기에 싫증이 나거든

남대문 시장을 가 보라던 그대여

나는 보았다

사흘 동안 품겼던 달걀 속에서

지구의 윤회와 같이 확실한

생(生)의 생(生)의 약동을!

 

서정시집(抒情詩集), 상호출판사, 1947

 

 


 

 

피천득 시인 / 시내

 

 

저 내를 따라서 갈려네

흐르는 저 물을 따라서 갈려네

 

흰 돌 바위틈으로 흐르는 물

푸른 언덕 산기슭으로 가는 내

 

내 저 내를 따라서 갈려네

흐르는 저 물을 따라서 갈려네

 

서정시집(抒情詩集), 상호출판사, 1947

 

 


 

피천득(皮千得. 1910 ~ 2007) 시인

수필가, 시인, 영문학자. 서울 출생. 호는 금아(琴兒). 상해 호강대학교(University of Shanghai) 영문과를 졸업. 1930년 "신동아"에 시 '서정소곡(抒情小曲)'을 발표하여 등단. 간결하고 섬세한 문체를 바탕으로 일상생활에서 느낀 감정을 순수하고 서정적으로 그려 낸 작품을 많이 창작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수필집 "인연", "금아 문선", 시집에 "서정 시집", "금아 시문선", "산호와 진주" 등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 경성중앙산업학원 교사로 근무하였고 광복 이후에는 경성대학 예과교수를 거쳐 1974년까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1954년에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연구하였으며 1963년부터 1968년까지 서울대학교 대학원 주임교수를 지냈다. 1991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 1995 제9회 인촌상 (문학부문). 1999 제9회 자랑스런 서울대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