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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피천득 시인 / 가을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3. 15.

피천득 시인 / 가을

    

    호수가 파랄 때는

    아주 파랗다

    어이 저리도

    저리도 파랄 수가

    하늘이, 저 하늘이

    가을이어라.

     

 


 

 

피천득 시인 / 고백

     

    

    정열

    투쟁

    클라이맥스

    그런 말들이

    멀어져 가고

    풍경화

    아베마리아

    스피노자

    이런 말들이 가까이 오다

    해탈 기다려지는

    어느 날 오후

    걸어가는 젊은 몸매를

    바라다본다

     

 


 

 

피천득 시인 / 기억만이

     

    아침 이슬 같은

    무지개 같은

    그 순간 있었느니

    비바람 같은

    파도 같은

    그 순간 있었느니

    구름 비치는

    호수 같은

    그런 순간도 있었느니

    기억만이

    아련한 기억만이

    내리는 눈 같은

    안개 같은

 

 


 

 

피천득 시인 / 저녁때

 

 

    긴 치맛자락을 끌고

    해가 산을 넘어갈 때

     

    바람은 쉬고

    호수는 잠들고

     

    나무들 나란히 서서

    가는 해를 전송할 때

     

    이런 때가 저녁때랍니다

    이런 때가 저녁때랍니다

 

 


 

피천득(皮千得. 1910 ~ 2007) 시인

수필가, 시인, 영문학자. 서울 출생. 호는 금아(琴兒). 상해 호강대학교(University of Shanghai) 영문과를 졸업. 1930년 "신동아"에 시 '서정소곡(抒情小曲)'을 발표하여 등단. 간결하고 섬세한 문체를 바탕으로 일상생활에서 느낀 감정을 순수하고 서정적으로 그려 낸 작품을 많이 창작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수필집 "인연", "금아 문선", 시집에 "서정 시집", "금아 시문선", "산호와 진주" 등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 경성중앙산업학원 교사로 근무하였고 광복 이후에는 경성대학 예과교수를 거쳐 1974년까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1954년에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연구하였으며 1963년부터 1968년까지 서울대학교 대학원 주임교수를 지냈다. 1991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 1995 제9회 인촌상 (문학부문). 1999 제9회 자랑스런 서울대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