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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양주동 시인 / 삶의 든든함을 느끼는 때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3. 13.

양주동 시인 / 삶의 든든함을 느끼는 때

 

 

가사 총알 한 방이

지금 내 머리를 꿰어뚫는다 하자―

그로 인하여 나의 피와 숨결이

과연 끊어질 것인가.

 

끊어질 것이면 끊어지라 하자,

아아 그러나 나의 이 위대(偉大)한 생명(生命)의

굳세인 힘과 신비로운 조직(組織)이야

어이 총알 한 방에 해체(解體)될 것인가.

 

조선의 맥박, 문예공론사, 1932

 

 


 

 

양주동 시인 / 삶의 하염없음을 느끼는 때

 

 

벗이여, 보라,

어린애의 철없는 장난과 웃음―

그 어느 것이 장차 크려는 힘의,

완성되려는 노력의 나타남이 아니뇨.

 

벗이여, 다시

늙은이의 쇠잔한 살빛과 얼굴을 보라,

얼마나 많은, 얼마나 험한 인생의 물결이

그의 이마 위에, 뺨 위에 새겨 있나뇨.

 

아아 그러나 내 어린이를 볼 때마다,

뒷날 사람의 하염없음을 알까 저어하노니,

내 차라리 늙은이에게, `삶'의 험한 바다 지나온

그 기쁨 그 위로 있음을 못내 부러워 하노라.

 

어린애는 어린앤지라, 저도 모르는 기쁨이 있고,

늙은이는 늙은이라, 남모를 위로도 있으려니,

아아 벗이여, 그대와 나, 젊고도 괴로운 우리의

이 젊은 날 권태와 설움을 어이하리오.

 

조선의 맥박, 문예공론사, 1932

 

 


 

 

양주동 시인 / 어머님 은혜

 

 

낳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 자리 마른 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어려선 안고 업고 얼러 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맘

앓을사 그릇될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 위에 주름이 가득

땅 위의 그 무엇이 높다 하리오

어머님의 정성은 그지 없어라.

 

조선의 맥박, 문예공론사, 1932

 

 


 

양주동(梁柱東) 시인 / 1903∼1977

호:무애(無涯). 시인.국문학자. 경기도 개성에서 출생. 1923년에 유엽. 백만 등과 함께 시 동인지 <금성>을 발간, 창간호에 시 [기몽(記夢)] [영원한 비밀]을 발표. 1928년에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과를 졸업. 평양 숭실 전문 학교 교수, 1929년에는 <문예공론>을 발간. 1940~1945년에 경신 중학교 교사, 1947년에는 동국 대학교 교수로 취임, 이후 서울대, 경희대, 숙명 여대 등에 출강하여 국문학 고전과 영문학을 강의. 이어 1954년에 학술원 종신 회원, 그 후 연세대 교수, 동국대 대학원장 등을 역임. 학술원상을 수상하고 문화 훈장, 국민 훈장 무궁화장을 수여받았으며, 신라 향가 등을 연구하여 초기 국어학계에 크게 기여. 저서에는 <조선 고가 연구><여우 전주><국어 연구 논고><국문학 고전 독본>등과 시집<조선의 맥박>,수필집<문주 반생기><인생잡기>, 역서 <에리엇 전집><영시 백선><세계 기문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