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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피천득 시인 / 작은 기억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3. 14.

피천득 시인 / 작은 기억

 

 

벽 위에 그림자는

그림 속에 애인들과도 같았다

 

둘의 머리칼은 스칠 듯하다가도

스치지는 않았다

 

이따금 숨결이 합할 때마다

불꽃이 나부꼈다

 

촛불을 들여다보며 새우던 밤

창 밖에는 눈이 나렸다

 

서정시집(抒情詩集), 상호출판사, 1947

 

 


 

 

피천득 시인 / 팔월십오일(八月十五日)

 

 

정말 시인(詩人)이라면

지금이야 시를 쓸텐데

사흘동안 어쩔 줄을 모르고

거리를 헤매었소

 

정말 시인(詩人)이라면

지금이야 시를 쓸텐데

사흘 밤을 잠을 못 들고

뒤채기만 하였소

 

그러나 시인(詩人)이 아니라도 고만이요

아무 것도 아니라도 좋소

나는 사람이 되었소

자유(自由)의 인민(人民)이 되었소

 

서정시집(抒情詩集), 상호출판사, 1947

 

 


 

 

피천득 시인 / 편지

 

 

오늘도 강물에

띄웠어요

 

쓰기는 했건만

부칠 곳 없어

 

흐르는 물 위에

던졌어요

 

서정시집(抒情詩集), 상호출판사, 1947

 

 


 

피천득(皮千得. 1910 ~ 2007) 시인

수필가, 시인, 영문학자. 서울 출생. 호는 금아(琴兒). 상해 호강대학교(University of Shanghai) 영문과를 졸업. 1930년 "신동아"에 시 '서정소곡(抒情小曲)'을 발표하여 등단. 간결하고 섬세한 문체를 바탕으로 일상생활에서 느낀 감정을 순수하고 서정적으로 그려 낸 작품을 많이 창작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수필집 "인연", "금아 문선", 시집에 "서정 시집", "금아 시문선", "산호와 진주" 등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 경성중앙산업학원 교사로 근무하였고 광복 이후에는 경성대학 예과교수를 거쳐 1974년까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1954년에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연구하였으며 1963년부터 1968년까지 서울대학교 대학원 주임교수를 지냈다. 1991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 1995 제9회 인촌상 (문학부문). 1999 제9회 자랑스런 서울대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