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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양주동 시인 / 탄식 -1-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3. 15.

양주동 시인 / 탄식 -1-

 

 

무진년(戊辰年) 여름 조선 각지(各地)에는 천재(天災)가 심하였다.

 

관북(關北)에는 사면 백리(百里)

전에 없던 큰 장마 지고,

영남(嶺南)엔 가물 들어

논밭엔 곡식이란 씨도 없이 말랐네.

 

하늘님도 무심치,

무엇 먹고 이 날을 지내가라나,

무엇 입고 이 겨울 지내가라나,

가뜩이나 이 백성들 갈 바를 몰라 하는데.

 

탄식한들 무엇하리,

반(半)밤에 일어나 혼자 비는 말―

그나마, 젊은 이 나라 사람의

붉은 필랑은 마르게 마시옵소서.

 

조선의 맥박, 문예공론사, 1932

 

 


 

 

양주동 시인 / 탄식 -2-

 

 

아기야 너는 갔느냐,

불쌍한 아기, 나의 아들아,

설움 많은 인간의 하나도,

고달픈 이 나라 사람으로,

외롭고 가난한 나의 아들로,

잠시 동안 태어났던 너―

아아 너는 그만 속절없이 돌아갔느냐?

 

(그러나, 아기야, 너는

철모른 그대로 왔다가 돌아갔도다,

너는 아비의 눈물도,

이 나라 사람의 쓰라린 가슴도,

모든 인간의 괴로움도 모르고

깨끗한 그대로 영원히 떠나갔도다,

아아 너의 혼은 어디를 가든지 평안하거라.

 

내 너를 위하여 지금 눈물 흘리며

너의 짧은 일생을 조상하노라.

그러나 너는 이 귀찮은 세상을

말도 셈도 알기 전에 떠나갔거니,

너의 혼만은 고이고이 구해졌도다!

아아 낸들 어이 어려서 돌아간 너를

하나마 복스럽다고야 하리오만은…….

 

조선의 맥박, 문예공론사, 1932

 


 

양주동(梁柱東) 시인 / 1903∼1977

호:무애(無涯). 시인.국문학자. 경기도 개성에서 출생. 1923년에 유엽. 백만 등과 함께 시 동인지 <금성>을 발간, 창간호에 시 [기몽(記夢)] [영원한 비밀]을 발표. 1928년에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과를 졸업. 평양 숭실 전문 학교 교수, 1929년에는 <문예공론>을 발간. 1940~1945년에 경신 중학교 교사, 1947년에는 동국 대학교 교수로 취임, 이후 서울대, 경희대, 숙명 여대 등에 출강하여 국문학 고전과 영문학을 강의. 이어 1954년에 학술원 종신 회원, 그 후 연세대 교수, 동국대 대학원장 등을 역임. 학술원상을 수상하고 문화 훈장, 국민 훈장 무궁화장을 수여받았으며, 신라 향가 등을 연구하여 초기 국어학계에 크게 기여. 저서에는 <조선 고가 연구><여우 전주><국어 연구 논고><국문학 고전 독본>등과 시집<조선의 맥박>,수필집<문주 반생기><인생잡기>, 역서 <에리엇 전집><영시 백선><세계 기문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