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동 시인 / 탄식 -1-
무진년(戊辰年) 여름 조선 각지(各地)에는 천재(天災)가 심하였다.
관북(關北)에는 사면 백리(百里) 전에 없던 큰 장마 지고, 영남(嶺南)엔 가물 들어 논밭엔 곡식이란 씨도 없이 말랐네.
하늘님도 무심치, 무엇 먹고 이 날을 지내가라나, 무엇 입고 이 겨울 지내가라나, 가뜩이나 이 백성들 갈 바를 몰라 하는데.
탄식한들 무엇하리, 반(半)밤에 일어나 혼자 비는 말― 그나마, 젊은 이 나라 사람의 붉은 필랑은 마르게 마시옵소서.
조선의 맥박, 문예공론사, 1932
양주동 시인 / 탄식 -2-
아기야 너는 갔느냐, 불쌍한 아기, 나의 아들아, 설움 많은 인간의 하나도, 고달픈 이 나라 사람으로, 외롭고 가난한 나의 아들로, 잠시 동안 태어났던 너― 아아 너는 그만 속절없이 돌아갔느냐?
(그러나, 아기야, 너는 철모른 그대로 왔다가 돌아갔도다, 너는 아비의 눈물도, 이 나라 사람의 쓰라린 가슴도, 모든 인간의 괴로움도 모르고 깨끗한 그대로 영원히 떠나갔도다, 아아 너의 혼은 어디를 가든지 평안하거라.
내 너를 위하여 지금 눈물 흘리며 너의 짧은 일생을 조상하노라. 그러나 너는 이 귀찮은 세상을 말도 셈도 알기 전에 떠나갔거니, 너의 혼만은 고이고이 구해졌도다! 아아 낸들 어이 어려서 돌아간 너를 하나마 복스럽다고야 하리오만은…….
조선의 맥박, 문예공론사,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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