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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피천득 시인 / 후회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3. 16.

피천득 시인 / 후회

 

 

산길이 호젓다고 바래다 준 달

세워 놓고 문 닫기 어렵다거늘

나비같이 비에 젖어 찾아온 그를

잘 가라 한 마디로 보내었느니

 

 


 

 

피천득 시인 / 축복

 

나무가 강가에 서 있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일까요

 

나무가 되어 나란히 서 있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일까요

 

새들이 하늘을 나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일까요

새들이 되어 나란히 나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일까요

 

 


 

 

피천득 시인 / 연가

 

 

훗날 잊혀지면

생각하지 아니 하리라

이따금 생각나면

잊으리도 아니하리라

어느날 문득 만나면

잘 사노라 하리라

훗날 잊혀지면

잊은 대로 살리라

이따금 생각나면

생각나는 대로 살리라

어느날 문득 만나면

웃으면 지나치리라

 

 


 

 

피천득 시인 / 잊으시구려

 

 

잊으시구려

꽃이 잊혀지는 것 같이

한때 금빛으로 노래하던

불길이 잊혀지듯이

영원히 영원히 잊으시구려

시간은 친절한 친구

그는 우리를 늙게 합니다.

누가 묻거든 잊었다고

예전에 예전에 잊었다고.

꽃과 같이 불과 같이

오래 전에 잊혀진

눈 위의 고요한 발자국 같이

 

 


 

피천득(皮千得. 1910 ~ 2007) 시인

수필가, 시인, 영문학자. 서울 출생. 호는 금아(琴兒). 상해 호강대학교(University of Shanghai) 영문과를 졸업. 1930년 "신동아"에 시 '서정소곡(抒情小曲)'을 발표하여 등단. 간결하고 섬세한 문체를 바탕으로 일상생활에서 느낀 감정을 순수하고 서정적으로 그려 낸 작품을 많이 창작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수필집 "인연", "금아 문선", 시집에 "서정 시집", "금아 시문선", "산호와 진주" 등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 경성중앙산업학원 교사로 근무하였고 광복 이후에는 경성대학 예과교수를 거쳐 1974년까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1954년에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연구하였으며 1963년부터 1968년까지 서울대학교 대학원 주임교수를 지냈다. 1991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 1995 제9회 인촌상 (문학부문). 1999 제9회 자랑스런 서울대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