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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삼 시인 / 소곡(小曲) -1-
먼 나라로 갈까나. 가서는 허기(虛飢)져 콧노래나 부를까나.
이왕 억울한 판에는 아무래도 우리나라보다 더 서러운 일을 뼈에 차도록 당하고 살까나.
고향의 뒷골목 돌담 사이 풀잎 모양 할 수 없이 솟아서는 남의 손에 뽑힐듯이 뽑힐듯이 나는 살까나.
햇빛 속에서, 문원사, 1970
박재삼 시인 / 소곡(小曲) -2-
노래밖에 모른다 해도 귀뚜라미가 옮기는 가녀린 발이 달빛 그늘을 짓밟고 깔아뭉개고 그렇게 한다고는 혹시 생각하지 않는가.
이 한밤 나혼자 쉬는 한숨이 사랑하는 잠든 사람의 어깨 위에 어느새 살이 아픈 뼈가 아픈 천 근의 무게되어 얹혀 있는데!
천년의 바람, 민음사, 1975
박재삼 시인 / 수양산조(垂楊散調)
궂은 일들은 다 물 아래 흘러지이다 강가에서 빌어 본 사람이면 이 좋은 봄날 휘드린 수양버들을 그냥 보아 버릴까.
아직도 손끝에는 때가 남아 부끄러운 봄날이 아픈 내 마음 복판을 뻗어 떨리는 가장자리를 볕살 속에 내 놓아…….
이길 수가 없다, 이길 수가 없다, 오로지 졸음에는 이길 수가 없다, 종일을 수양이 뇌어 강은 좋이 빛나네.
뜨거운 달, 근역서재, 1979
박재삼 시인 / 수정가(水晶歌)
집을 치면, 정화수(精華水) 잔잔한 위에 아침마다 새로 생기는 물방울의 신선한 우물집이었을레. 또한 윤이 나는 마루의, 그 끝에 평상(平床)의, 갈앉은 뜨락의, 물냄새 창창한 그런 집이었을레. 서방님은 바람같단들 어느 때고 바람은 어려올 따름, 그 옆에 순순(順順)한 스러지는 물방울의 찬란한 춘향(春香)이 마음이 아니었을레.
하루에 몇번쯤 푸른 산 언덕들을 눈아래 보았을까나. 그러면 그때마다 일렁여오는 푸른 그리움에 어울려 흐느껴 물살짓는 어깨가 얼마쯤 하였을까나. 진실로, 우리가 받들 산신령(山神靈)은 그 어디 있을까마는, 산과 언덕들의 만리(萬里)같은 물살을 굽어보는, 춘향(春香)은 바람에 어울린 수정(水晶)빛 임자가 아니었을까나.
춘향이 마음, 신구문화사, 1962
박재삼 시인 / 슬픈 노래에 머물고
해와 달, 별은 천날 만날 하늘 속에 밖에는 뜰 줄 모르건만 우리가 우러르는 곳에 휘영청 높이 있고 한결로 빛나기 때문에 가장 거룩한 것이여!
새도 하늘을 나는 부러운 재주를 가졌건만 그러나 결국 땅에서 죽고 말고, 간혹 사람은 상상의 날개로 멀리 갈 수는 있지만 어차피 지상을 못 벗어나는 것.
아, 이 숙명을 읊는다는 것이 어쩔꺼나 슬픈 노래에 머물고, 새만도 못한 떨리는 목청으로 돌아오느니.
사랑이여, 실천문학사,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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