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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조태일 시인 / 농주(農酒)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5. 16.

조태일 시인 / 농주(農酒)

 

 

아하, 옛부터 우리의 농주(農酒) 속에는

더위란 아예 없었나부다.

울퉁불퉁한 팔뚝의 심줄을

무슨 무슨 산맥처럼 뽐내며,

서울의 냉막걸리가 아닌 투박한 농주(農酒)를

사발로 사발로 마셔보면 알지.

 

깊은 산 속의 옹달샘 위에서나 산다든지

북극의 얼음 위에서나 겨우 살아가는

그런 싸늘한 바람도 어느 틈에 왔는지

내 입술을 사알짝 스쳐서

그 건강한 농주(農酒)를 찰랑이다가

이내 친근한 일꾼처럼 취해 버리지.

 

에라 모르겠다.

술취한 그 바람의 등을 타고

은하수가 널려 있는 밤하늘로 올라가서는

이승의 주막집을 드나들듯

농주(農酒) 냄새 풍풍 풍기면서

저 무수한 별들의 주막집을

 

통행금지도 없이 드나들다가

밤새 내 한국은 어찌 됐는지

궁금증도 풀 겸, 새벽녘에 별똥 타고 내려와서

그 끈끈한 농주(農酒)로 해장이나 할까부다.

여름을 혼자서만 타는 듯,

온통 혼자서만 새까맣게 타버린

그 걸걸한 웃음소리의 천상병(千祥炳)씨랑.

 

식칼론, 시인사, 1970

 

 


 

 

조태일 시인 / 눈깔사탕 1

 

 

어찌하여 어찌하여 살아오는

내 인습(因習)의 지저분한 족보(族譜)에서

굴러다니는 몇 개의 눈깔사탕,

미쓰야, 미쓰야, 심심하겠다

어서 어서 줏어 먹어라.

줏어 먹고 건국을 해야지 건국을.

 

당신들과 나의 세월도 아닌

타인들의 세월 속을 굴러다니느라

다 녹아났네, 다 녹아났네.

고구려(高句麗) 병정들의 천년 후를 내다보던

백제(百濟) 처녀들의 천년 후를 내다보던

눈망울이었을까 나도 몰라.

 

가난 속을 한 속을 굴러 다니다가

아아 가난해진 눈빛이여 빛이여,

빗발 속에 어른대는 지도,

지도 속에 번지는 산하여, 언어여.

미쓰야, 미쓰야, 억울하겠다

어서 어서 나의 산하 나의 언어의 빛깔을 줏어 먹어라.

어느 뜨거운 모성(母性)을 엮어 울을 치고

어느 때도 보지 못했던 공화국을 잉태해야지.

 

어찌하여 어찌하여 또 살아 갈

내 인습의 어지러운 족보에서

굴러 다니는 몇 개의 눈깔사탕.

 

식칼론, 시인사, 1970

 

 


 

 

조태일 시인 / 눈깔사탕 2

 

 

나의 가슴 안 가장 쓸쓸한 곳으로

비 내리듯 비 내리듯 내리는 불만의 처녀들.

그들은 어느 때나 식욕을 느끼고

무엇에 있어서나 그들은 맹목적이다.

생활에 관해선 신경질적이고

공화국의 일에 관해선 무관심하고

그러나 나의 파리한 육체에 관해선

잔인한 짐승의 습성으로 항상 내란을 일으킨다.

 

그래, 조용히 말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면

그래, 조용히 흐느낄 수 있다면

상품 주듯 상품 주듯

눈깔사탕을 주고 싶다.

눈깔사탕을 받아 먹어라.

적당히 뜨거운 타액으로 녹아 내리리라.

거기 난해한 공화국은 분해되어 흐를 것이고

나의 육체는 늠름하게 흐를 것이다.

생활은 그냥 찌꺼기로 남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의 가슴 안 가장 쓸쓸한 곳은

어쩔 수 없는 너희들 함성으로 충만할 것이다.

 

식칼론, 시인사, 1970

 

 


 

 

조태일 시인 / 눈깔사탕 3

 

 

무엇에나 할 것 없이 신경질적인 나의 순처녀는

눈깔사탕을 받아들자 히히히 호호호 웃더니만

별안간 건국하는 방법을 감득했는가

꺼이꺼이 울음 울었다.

 

남자들이 눈깔사탕을 한 개씩 가지고

멀고도 가까운 시간의 기슭을 더듬으며 떠나니

여자들도 쫄랑쫄랑 따라나섰다.

어느 무덥고 긴 여름날,

남자와 여자들은 꿈의 벌판에서 언어를 잃고 누워 있었다.

그러다가 그러다가 눈깔사탕이 녹아 내릴 때

하, 옆에서 녹아 내리던 어린 시간들

그들도 녹아 내렸다.

 

바람도 붉게 물드는 내 혈맥의 어귀에서

남자들은 눈깔사탕 빛깔의 속옷을 벗었다.

여자들은 눈깔사탕 빛깔의, 남자의 음성 빛깔의

붉은 스커트를 벗었다.

 

그 다음날 다음날부터는

나는 한 개의 슬픈 악기가 되었다.

시의 이랑을 불어가는 바람 소리랄까,

민중의 가슴패기에서 펄럭이는 지폐의 그런 소리가 잘도 나는.

 

그리하여 그 다음날 다음날부터는

식욕이 없어도 살아가는

음악이 없어도 살아가는

그런 저런 남자가 되어버렸네.

저렇게 꺼이꺼이 우는

순처녀만으로 살아가겠네.

 

식칼론, 시인사, 1970

 

 


 

조태일(趙泰一. 1941년-1999년) 시인

전남 곡성 출생. 1970년대 유신독재체제에 반대하는 시를 발표하고 여러 차례 옥고를 치러 '저항시인'으로 불렸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 경희대 대학원 문학 석사학위(1985), 박사학위(1991)를 받음. 1962년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1964년, 시 〈아침선박〉으로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1969년 월간 시 전문지 〈시인〉을 창간해 김지하·양성우·김준태 등을 등단시킴. 1974년에는 고은·백낙청 및 신경림·염무웅·박태순·황석영·조해일 등과 함께 민족문학운동단체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창립을 주도. 자유실천문인협의회는 1987년 9월 17일 창립된 민족문학작가회의의 모체가 됨. 1989년 이후 광주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임하면서 1994~1999 예술대학장을 역임.

시집 〈식칼론〉(1970), 〈국토〉(1975), 〈가거도〉(1983), 〈연가〉(1985), 〈자유가 시인더러〉(1987), 〈산속에서 꽃속에서〉(1991) 등을 펴냄. 〈풀꽃은 꺾이지 않는다〉(1995)로 제10회 만해문학상을 수상. 1991년 전라남도 문화상, 1992년 편운문학상, 1993년 성옥문화상, 1995년 만해문학상을 받음. 사후 보관문화훈장이 추서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