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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덕규 시인 / 대각선을 완성하기 위하여
우리는 서 있었다, 각각, 방 마주 보는 두 구석에. 두 눈은 정염에 불타 올랐지만 냉정해지려고 애쓰면서 서로를 향하여 천천히 걸어갔다. 적당한 거리를 두게 되었을 때부터 우리는 서로를 안기 위하여 팔을 뻗었다, 다시 한번 냉정을 확인하며.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멈춰 선 곳이 처음의 바로 맞은편 자리임을 알게 되었다. 서로의 위치만 맞바꾼 채 마주 보고 서 있는 꼴이 되었다. 너는 혹시 물이 아니냐, 투명 인간이 아니냐. 어쩌면 내 몸을 그렇게 통과해서 내 섰었던 그 자리에 갈 수 있느냐. 한 순간 냉정을 잃고 내 가슴을 뚫고 간 것이 아니냐. 우리는 각자 제 가슴을 만져 보며 서로를 의심하였다.
의혹은 짙어 갔다. 오랜 세월을 흘려 보내며 우리는 우리의 행로가 직선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잠시 눈멀었었거나 서두르다 발을 잘못 내디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참으로 경솔했었다고 자책하며 이번만은 하고 생각하며 우리는 다시 꼿꼿하게 서로를 향하여 걸어가기 시작했다.
냉정을 잃으면 안돼. 이성을 버리고 서둘면 우린 또 우릴 지나치게 돼. 내 몸을 불타게 내버려 두고 그림자만 길게 내 발목에 닿게 해선 안 돼. 이제는 확신에 차도 조심조심 정염도 사랑도 식히며 조심…… 앗, 그런데 여기는 어딘가, 한 순간을 뿌리치고 돌아서면 너는 왜 또 내 서 있던 그 곳에서 안타깝게 날 보고 섰느냐?
수많은 나날이 이마에 그늘과 주름살을 만들었다. 우리의 수염과 이빨이 땅에 떨어져 어느날 방바닥에서 검은 침엽들을 가진 빛나는 금속성의 나무가 자라나고 그 나뭇잎 사이로 우리는 우리가 지난 길을 가로지르는 또 한 쌍의 만나지 못하는 연인들이 서로의 몸을 자꾸만 지나쳐 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지만, 지친 우리가 걸어가 보면 너는 또 내 몸을 지나가 내 서 있던 그 자리에 가 있곤 하는 것이었다.
아름다운 사냥, 문학과지성사, 1984
박덕규 시인 / 따뜻한 손
따뜻한 손 잡으니 참 따뜻합니다. 온돌방 구들장이 그립습니다. 손끝으로 전해 오는 당신의 숨결, 삐걱대는 뼈마디들을 안심시키고 침묵하는 간을 녹여 주는군요.
이토록 꽁꽁 내 심장 얼음덩이 얼어 있을 줄 몰랐어요.
박덕규 시인 / 달력 보는 법
눈이 어두워 바늘귀에 실을 꿸 때는 더듬거리시면서
할아버지 제삿날 우리 식구들 생일 다달이 달려 있는 명절
돋보기도 끼지 않고 큰 숫자 밑에 웅크린 작은 숫자 속에서
참깨 고르며 티 골라내듯이 용케 찾아내시는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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