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김건희 시인 / 돌탑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5. 16.

김건희 시인 / 돌탑

 

 

노을의 혀가 차오르는 강물에게 건네는 말

차곡차곡 씹어 올리다 보면

돌탑이 된다

 

닳아 가는 말 알아들어

포개어지는 말 알아들어

한 권의 시집을 엮을 수 있다면

내 입술은 너의 바닥을 제대로 읽었다 말할 수 있으리

 

너로부터 닫혀 있는 나, 나로부터 닫혀 있는 너

노을 서성이는 강가에서

서로의 등에 얽힌 사연을 들춰

어떤 돌은 너를 닮았다고

어떤 돌은 나를 닮았다고

 

흘러서 또 어디로 떠나는 물에게

중얼거림을 하나 더 보탠다

 

아래위 구분되지 않는 탑을

우리는 그렇게 무던히 쌓기도 하고

하염없이

허물기도 하는 거였다

 

 


 

 

김건희 시인 / 물총새를 날리다

 

 

방금 눈을 뜬 어린 물총새가 갸웃갸웃

수초는 밀가루 뒤집어쓰고 소낙비에 젖어

철없이 첨벙거리던 발목으로 새알 수제비인 듯

비벼졌다

 

보글보글한 생각들을 강둑에 내려놓는다

 

이끼 젖은 바위는 아직도 잠결

머리 안쪽에서 물총새를 꺼낼 때 번개처럼 생각의 물살은

어슷썰기를 할까, 채썰기를 할까

칼등의 무거움도 아래로 흐른다

 

눈대중으로 크기를 재어보는 거긴

주방 저울 눈금이 이리저리 흔드는 강

 

금을 밟은 물안개 뒤에서 기웃거리는 햇살이

물총새를 내 모습으로 볼 때

꺼내온 묵상들로 아침상 차리는 그녀

흘러든 하구는 둥글게 끓는 밥솥이다

 

흔들자, 푸시시 푸시시 떠나는 군단

이팝나무 꽃자리도 불안한 침묵에

안개는 어떤 발소리도 들려주지 않았다

 

막사발에 뜸 들여 퍼 올린 쌀밥이

조리사의 하얀 가운을 자꾸 빌려 달라 조르자

냅다, 미끄덩한 껍질의 후미를 던진다

 

떠나는 물총새는 소실점을

저 혼자 지운다

 

 


 

김건희 시인

2018년 제3회 《미당문학》 신인작품상 등단. 최충문학상 산림문화공모전 수상. 현재 대구문인협회회원, 형상시학회장.